한국일보

차이코프스키 사계(四季) - 로맨틱한 ‘가을’의 소리

2019-08-27 (화) 07:49:47 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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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한여름의 끝자락, 뜨거운 날들이 가고 다채로운 색깔의 가을이 다가온다. 가을에는 뜨거운 햇살에 벼와 과일 등이 익어간다. 우리들의 먹거리도 풍성해지고 마음도 살찐다. 9월 첫날, 클래식 방송의 단골 음악은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사계> 중 ‘가을’과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사계> 중 9월 ‘사냥’, 10월 ‘가을의 노래’이다. 비발디의 가을은 마을 사람들이 가을의 풍년을 축하하는 축제 풍경을 그렸다. 차이코프스키의 가을은 낭만적인 피아노곡으로 우수(憂愁)에 젖은 가을의 분위기를 애잔하게 표현했다.

September: The Hunt
It is time! The horns are sounding!
The hunters in their hunting dress
are mounted on their horses;
in early dawn the borzois* are jumping.

9월: 사냥
시간이 됐다! 나팔 소리 드높도다!
사냥복을 입은 사냥꾼들
말을 몰아 달린다;
이른 새벽 보르조이*가 뛰어다닌다.


*보르조이(borzoi): 털이 하얀 러시아산 큰 개

알렉산드르 푸쉬킨(Aleksandr Pushkin, 1799~1837)의 시에 곡을 붙인 차이코프스키의 9월 ‘사냥’. 아래 악보에서 보여지듯 꽉꽉 채워진 화성과 리드미컬한 리듬이 나팔 소리,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 등 사냥의 경쾌함을 잘 묘사했다. 마치 사냥길에 오르는 사냥꾼들과 사냥개들의 들떠 있는 듯한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듣는 듯 하다.

October: Autumn Song
Autumn, our poor garden is all falling down,
the yellowed leaves are flying in the wind.

10월: 가을의 노래
가을, 초라한 난초 위로 내려앉고,
노랗게 물든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네.

차이코프스키의 10월 ‘가을의 노래’를 들으면 이제 정말 가을이 찾아왔구나! 라고 느껴진다. 10월의 차갑고도 쓸쓸한 여백이 느껴지는 차이코프스키만의 감성과 우수(憂愁)에 젖은 러시아의 가을 분위기가 알렉세이 톨스토이(Aleksey Tolstoy, 1883~1945)의 시에 잘 녹아들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가을날의 서정이 한껏 묻어나는 10월의 가을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누군가 우리를 아련한 추억 속 어딘가로 데려 갈 듯만 하다.

가을이 되어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노랗게 물든 잎사귀는 바람에 흩날린다. 오른손에서부터 시작하는 주선율을 곧 왼손이 이어 받고, 중간부에서 낮은 음역대와 높은 음역대가 번갈아 주고받는 부분은 마치 연인의 쓸쓸한 대화를 듣는 것 같다. 낙엽이 하나 둘 힘 없이 떨어져 바람 사이로 흩날리는 모습처럼 이별을 한 이가 되돌릴 수 없는 헤어진 연인과의 좋았던 시간을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쓸쓸한 선율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따갑지 않은 햇살이 주는 가을의 느낌, 산이 들려주는 가을의 소리, 음악으로 표현된 가을의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고 로맨틱한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 커피 한잔의 그윽한 향과 함께 가을의 시작을 몸으로 느끼고 소리로 들어보자.

<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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