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씨 성’으로 가늠하던 한인사회

2019-08-22 (목) 12:00:00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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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회학자인 유의영 교수의 근황을 우연히 전해 듣고 한번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그처럼 활발하게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학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인데, 지난 날 그가 했던 많은 서베이는 어떤 것이었고, 한인사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지 되짚어보고 싶었다.

지난 1968년 칼스테이트 LA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했던 유 교수의 LA 살이는 올해로 51년이다. 지난 95년 은퇴한 후 대학 강의는 2005년까지 계속했다고 한다. 칼스테이트 LA에 한국학 연구소를 만들어 초대소장을 지낸 유 교수가 지난 80년대에 한국일보와 공동으로 했던 많은 조사의 결과는 당시 한인사회의 현황을 말해 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 요긴하게 활용됐었다.

-그때 무슨 서베이를 그렇게 많이 하셨죠?


“당시는 한인들이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며, 한인사회에 어떤 이슈가 있나 알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던 때였죠. 그걸 알아보자는 거였어요.”
도시사회학과 인구문제 분석이 전공인 그는 10년마다 실시되는 연방센서스 외에는 한인에 관한 통계가 거의 없던 그 무렵, 경제와 가정문제, 한흑 관계 등 한인사회의 주요 이슈를 숫자로 잡아내 현황을 파악했다.

“80년대만 해도 작은 식품점이 많았고 소매업소가 번성했죠. 대형마켓이 생기면서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요. 한인타운의 집값은 쌌고, 한국에서 한해 4만명 가까이 이민을 와 인구가 급증하던 때이기도 했죠.”

유 교수는 당시 안개 속에 있던 한인사회의 실체를 ‘김씨 성’ 표본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파악했다. 지난 60년대 초 한국의 김포군과 고양군에서 실사를 통해 알아낸 ‘김씨가 한국인의 23.5%’ 라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 ‘김 샘플 메소드(Kim Sample Method)’로 명명된 이 통계학 방법론은 후배 교수 한사람과 공동저자로 학술지 ‘데모그라피’를 통해 처음 미국학계에 소개됐다.

뻥 튀기로 회자되던 미주의 한인인구를 90년 연방센서스 결과와 거의 다르지 않게 뽑아내 그 정확성이 입증되기도 했던 ‘김씨 방법론’은 의사나 교수 등 소그룹의 한인들을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됐다. 선거를 앞두고 카운티 유권자등록국에서 열심히 ‘Kim’을 뽑아내 한인유권자 수를 추산하던 기억이 새삼스럽지만, 그 후에도 이 방법은 한인 부동산소유주 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요긴하게 사용됐다.

지금은 김씨 성을 통해 커뮤니티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방법은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예를 들어 로랜하이츠에 한인이 얼마나 사는지 알고 싶으세요? 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ACS)를 쳐서 들어가면 언제든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연방센서스국이 1년에 한번 각 민족별로 다양한 표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한인관련 여러 통계도 이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료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 우리 스스로 우리의 현 주소를 알아내,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값진 노력의 결과로 여겨진다.

지난해 팔순을 지난 유의영 교수는 인근 엘몬티 고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한 부인 오옥실 씨와 매일아침 집에서 30분 거리인 맥도널드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늘 먹는 것”이라며 시니어 커피와 부리토를 주문한 이들 부부에게는 ‘맥 다방’에서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과 어울려 담소하는 것이 은퇴생활의 작은 즐거움으로 보였다.

한인사회 돌아가던 이야기 끝에 지난해 LA 한인사회가 겪었던 주민의회 분리 이슈에 화제가 미치자 그는 “이기적인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되죠” 라고 말한다. 4.29폭동 등 첨예한 사회갈등을 가까이서, 혹은 캠퍼스에서 지켜보며 반세기를 보낸 원로 사회학자는 이웃을 배려하고 어울려 사는 성숙함이야말로 다인종 이민사회의 오늘을 사는 지혜로 생각하고 있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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