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웨스턴가의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서자 허공에다 삿대질을 하는 50대 여성이 눈에 들어 왔다. 마침 그곳에서 아침 약속을 했던 사람이 그녀를 알아봤다. 2~3년 전까지 타운 4가와 세라노의 한 아파트에 살던 미스 백이라고 한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파트에서 쫓겨난 그녀는 멀리 이사 가지 않았다.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 텐트를 쳤다.
그 햄버거 집에서 옷 꾸러미 2개를 옆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던 40대 한인여성도 어디 갈 데가 없는 듯 했다. 얼마 뒤 나와 보니 주차장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말을 걸자 어색한 미소만 짓는 그녀는 타운 노숙자 커뮤니티에는 뉴 페이스라고 한다.
올림픽과 윌턴 근처에는 휘어진 길이 하나 있다. 노숙인들에게 편하게 보이는 곳이다. 골목 들어서자마자 왼쪽 텐트가 미스 신 네이고, 반대편 길가에 서있는 낡은 밴은 김모 씨의 거처. 혼혈인 김씨는 일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2년 전부터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자격증도 몇 개 있고, 얼마 전 보험회사와의 소송에서도 이겼어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 본인의 말인데, 주위에서는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같은 골목의 미스 신은 붙박이 형이다. 더운 낮에도 텐트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간혹 돕겠다는 이들이 찾아와도 물과 빵 정도만 받아들일 뿐이다. 노숙인들이 많이 받는 카운티 현금보조 프로그램인 GR이나 칼 프레시(푸드 스탬프)를 신청하지 그러느냐고 하면, 체류신분이 안된다고 할 뿐 대부분의 노숙인이 그렇듯 별 말이 없다. 화장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한인마켓을 이용하는 눈치다.
사실 화장실과 샤워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쉘터 지어봐야 몇 명이나 들어가겠어요. 차라리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더 늘리는 게 현실적으로 노숙자를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운 인근의 공중 화장실은 가까운 곳이 버몬트와 샌타모니카, 알바라도와 7가 정도고, 샤워는 ‘샤워 오브 호프’가 운영하는 샤워 차가 요일에 맞춰 맥아더 공원 등을 돌뿐이다. 관리인이 있는 화장실과 세면대 하나 운영하는 데만 연 34만 달러가 든다며 LA시가 손사래를 치는 동안, 노숙인들은 눈치껏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 인심은 그래도 맥도널드 등 대형체인이 후한 편, 인 앤 아웃이나 팬다 익스프레스 등은 화장실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것이 노숙인들 사이에서 요긴한 정보가 된다.
올해로 노숙자 사역 33년이 되는 글로리아 김 선교사는 새벽에 야채 수프를 끊이고, 과일과 생수, 베이글이 든 꾸러미를 만들어 타운 인근 노숙자들에게 돌리고 있지만 “한끼 갖다 주는 것이 무슨 해결책이 되겠느냐”고 한다. 그녀는 샤워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노숙인들이 형편에 따라 며칠이라도 머물며 회복할 수 있는 케어 센터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한인타운의 노숙자 밀집지 중 한 곳인 4가와 샤토에는 한인들이 네 집이 되고 드물게 서로 내왕도 하며 지낸다. 그 중에 오래된 차가 한 대 있는 60대 조모 씨는 주말이면 LACC에 서는 스왑밋에 나가 50달러도 벌고 60달러도 번다. 20대 후반의 한인청년은 자전거만 고치고 있고, 약값 받으러 오는 딜러와 가끔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는 한인여성은 라티노 남편과 노숙생활을 한다.
노숙자가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마약 도박 알콜 등의 중독, 정신질환, 경제문제, 동성애 때문에 식구들로부터 버림받거나 이혼 후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의 한인 노숙자들은 마약이 주 원인이던 전과는 달리 경제문제가 많다고 한다. 스왑밋 조씨, 물과 빵만 받는다는 미스 신, 자전거 수리 청년 등은 정신도 멀쩡하고 누가 몇 달만 뒤를 봐줘도 자립할 수 있을 사람들이라며 주위에서는 안타까워한다.
노숙인들은 방 한칸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이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지상의 방 한칸’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된다.
LA카운티는 노숙인 6만명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뒤채가 노숙자 때문에 불에 타 버리고, 집 앞에 진을 치는 노숙인 캠프를 막기 위해 선인장을 심어야 하는 한인들의 분노에 찬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노숙인 문제는 이제 운명처럼 모두가 함께 안고 가야할 문제가 되어 버렸다. 주나 카운티, 시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래야 별 뾰족한 것이 없고, 방을 빼앗긴 사람들은 계속 거리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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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