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타는 민족주의, 그 결말은…

2019-08-1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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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글로벌 금융기업이다. 이 UBS가 자사 경제 분석가의 한 마디 말 때문에 엄청난 곤경에 맞게 됐다. 중국이라는 시장을 송두리째 잃을 뻔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돼지열병(swine fever)이 번져가고 있었다. 돼지고기 값이 폭등하면서 중국사회 전체가 술렁인다. 어떤 경제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인가. 이에 대한 UBS의 경제분석가의 코멘트가 문제가 됐다.

‘중국 돼지(Chinese pig)’라면 몰라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코멘트의 요지였다. 여기서 말한 ‘중국 돼지’는 말 그대로 열병에 전염될 수 있는 중국의 돼지를 지적한 것. 그 코멘트가 공개되자 중국인을 돼지로 비하했다는 항의가 쇄도하면서 ‘UBS 보이콧’ 운동이 일파만파 번져나간 것이다.


툭하면 외국상품, 외국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그 중국의 불매운동이란 것이 그렇다. 통치세력이 반외세정책의 일환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니까 ‘중화민족주의라는 괴물’을 뒤에 숨어서 교묘히 조종하는 한 방편으로 이용해왔다고 할까.

하여튼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럴 때마다 동원되는 것이 한(漢)지상주의, 혹은 중화민족주의다. 공산당 집권 이후, 특히 2012년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어 더 두드러진 현상이다.

10주째 접어들었다. 그 홍콩시위가 ‘색깔혁명’으로 변할 기세다. 2000년대 초 구소련 권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 ‘색깔혁명’이다.

변방에서 일어난 사태지만 그런 면에서 홍콩시위는 중국공산당 체제를 뒤흔들 수도 있다. 그 홍콩 사태를 시진핑은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중국인민해방군 진입은 필연수순이다. 일각에서의 전망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다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톈안먼 식 진압은 마지막 수단이고 역정보작전에 중국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혼용한 중국공산당의 고전적 전술로 사태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 시노인사이더의 진단이다.

그 전술은 ‘군중으로 군중을 제압하다(群衆鬪群衆)’로 요약된다. 삼합회 조직폭력배, 본토의 안보요원 등을 홍콩에 투입해 ‘민주화세력 대 친 베이징세력 간의 갈등’으로 프레임을 뒤바꾸어 사태진압에 나선다는 것. 이미 상당수 본토 안보요원들이 홍콩에 잠입했다는 시노인사이더지의 보도다.

블룸버그 통신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조직폭력배, 안보요원, 민병대 등 투입에다가 사이버공격을 강화하는 등 그레이존(gray zone-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지대)행위를 부쩍 증대시킬 것이다.” 다시 말하면 2014년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사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중국 국내버전을 통해 홍콩사태에 대응해 나간다는 거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르는 데 사용될 이데올로기다. “베이징은 한지상주의, 다시 말해 중국판 종족 민족주의를 그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고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진단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인들을 변방의 분리주의자 소수계로 색칠을 해대는 거다. 온갖 선동선전 수단을 동원해. 그럼으로써 중화민족 부흥의 중국몽(中國夢)을 추구하는 ‘우리’와 그 대열에서 이탈한 ‘그들’로 철저하게 편을 가른다.

그 편 가르기에는 ‘그들’, 다시 말해 상상의 적에게는 ‘한 지상주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가해도 좋다는 함의도 숨어 있다. 한족과 위구르족과의 충돌로 140명이 숨진(대부분 위구르족) 2009년의 우루무치사건이 한 예다. 티베트, 신장성 등지에서의 대대적 탄압에서 사용된 수법이 바로 이 민족, 혹은 종족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 전술이다.

그래서인가. 홍콩계 중국인들에 대한 본토출신 중국인들의 물리적 공격행위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 뉴질랜드 오크랜드 대학에서 벌어진 홍콩자유화 지지 시위에 참여한 홍콩출신 여학생을 본토에서 온 남성이 폭력을 가한 행위가 그 한 예.

중국의 관영매체는 그런데 본토 출신 남자가 오히려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지 중국총영사가 그 폭력행위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베이징의 종족 민족주의 무기화와 함께 예견되는 사태는 본토는 물론 전 세계 중국 디아스포라 커뮤니티마다 편이 갈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이 종족 간 편 가르기 전술은 톈안먼 식 진압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결론이다.

한 그림이 겹쳐진다. ‘의병이, 죽창가가 제창된다. 애국가도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벌어진다.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했다는 이유로. 반일영화에 반일드라마가 넘쳐난다.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면 대뜸 토착왜구로 몰린다…,’ 닥치고 반일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갈등과 대립조장에 더 열심이다.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한 권력실세는 의견이 다르면 매국이고 이적행위라고 몰아 부친다.

반일이란 프레임을 씌운 대한민국 버전의 이 불타는 종족 민족주의. 그 끝은 어디일까. 민주주의의 위기다. 아니 그보다도 좌파 파시즘의 시작, 더 나아가 대한민국 자체의 와해가 아닐까.

북이 미사일을 쏴대든 도발을 해오든 한마디 없다가 ‘김정은의 북한과 힘을 합칠 때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민족주의의 본색은 드러났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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