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의 메디치’ 일라이 브로드

2019-07-30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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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제발, 나의 세금을 인상해주세요.”

한달전 이런 기고문을 뉴욕타임스에 실어 화제가 됐던 일라이 브로드(86)는 2010년 시작된 억만장자들의 기부선언에 가장 먼저 서명한 사람이다. 재산의 절반이상을 기부하자는 이 서약에서 브로드는 절반이 아니라 75%를 내놓겠다고 약속했고,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실행해왔다.

현 자산 67억달러, 세계 233위, 미국 내 78위의 부자(2019 Forbes)인 브로드가 그동안 사회 각 기관에 기부해온 액수는 40억달러가 넘는다. 그가 주력한 분야는 공립교육, 과학 의학연구, 문화예술의 3개 분야로, 인간의 마음과 육체와 정신의 개선을 위한 투자이다. 이중에서 그는 교육과 의학연구에 훨씬 많은 돈을 기부했고, 그 분야에서 이룬 성취가 더 크다고 말하지만, 만성 재정난에 시달리는 문화예술계에서야말로 브로드는 은인이고 천사이며 구세주이다.


사람들은 2015년 다운타운에 문을 연 더 브로드(The Broad) 뮤지엄을 가장 많이 알지만 바로 그 앞에 있는 모카(MOCA) 현대미술관, 그 옆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길 건너의 LA 오페라, LA카운티 뮤지엄(LACMA)과 산타모니카의 브로드 스테이지… 모두 일라이 브르도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속이 힘들었을 예술기관들이다.

그는 1965년 라크마가 창립될 때부터 기부금을 냈고, 2003년 6,000만달러를 쾌척해 라크마 내에 BCAM 미술관을 건축했으며, 아직도 종신이사로 기여하고 있다. 모카 미술관은 그가 창립한 거나 마찬가지다. 79년부터 창립이사장으로 활약하면서 재정과 경영에 두루 간여해왔으며, 2008년 재정난으로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 3,000만달러를 기부해 회생시켰다.

지금은 LA의 명물이 되었지만 한때 ‘저주의 사원’이라 불리며 5년 이상 건축이 멈춰있던 디즈니 콘서트홀을 다시 짓게 만든 것도 브로드의 지독하고 집요한 모금운동 덕분이었다. 지금 그 건너편에서 건설 중인 ‘그랜드 애비뉴 프로젝트’ 역시 그가 처음부터 관장해온 작품이다.

10년전 LA 오페라가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600만달러를 기부한 것도 그였고, 플라시도 도밍고 총감독(Placido Domingo Eli and Edythe Broad general director)에 그의 이름이 붙는 것도 이 직책에 700만달러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1,000만달러 기부해 산타모니카 칼리지의 공연센터 브로드 스테이지를 지었고, UCLA, USC, 칼아츠, 칼텍, 미시건 주립대학 내에도 모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과 공연장이 지어져있으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 개인이 한 도시의 문화 환경을 이처럼 집중적으로 개선시켜놓은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LA의 메디치’로 불리는 일라이 브로드가 없었다면 LA 문화예술계는 아직도 ‘불모지’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브로드는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다. 뉴욕 브롱스에서 가난한 페인트공의 아들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한 그는 워낙 두뇌가 명석해 미시간주립대 회계학과를 3년만에 우등 졸업했고,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미시건 주 사상 최연소로 합격했다. 20세때 이디스 로손과 결혼, 처가로부터 지원받은 2만5,000달러로 도널드 브루스 코프만과 손잡고 1957년 주택분양사업(현 KB홈)에 뛰어든 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젊은 부부들이 외곽으로 몰리는 현상에 주목,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지하실 없는 규격화된 주택을 대량으로 지어 싼 값에 분양한 것이 히트한 것이다.

이어 1971년 생명보험회사 ‘선라이프’를 5,200만달러에 인수, 은퇴연금 전문회사로 재구축한 ‘선아메리카’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1999년 미 최대보험사인 AIG에 180억달러에 매각됐다. KB홈과 선아메리카는 모두 포춘 ‘세계 500대 기업’에 올랐는데, 개인이 창립한 기업 2개가 함께 오른 유일한 기록이다. 이후 브로드는 풀타임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다가 2017년 은퇴하여 일선에서 물러났다.

1963년부터 LA에서 살며 이 도시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브로드를 기자회견이나 오프닝 행사에서 가끔 만나곤 한다. 작고 깡마른 체격, 백발에 까무잡잡한 얼굴이 무척이나 깐깐해 보이는 노인이다. 실제로 그는 고집이 세고 독선적이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돈을 그렇게 많이 기부해도 사전과 사후 검증을 철저하게 요구하며 평가하기 때문에 지독하다는 이야기도 더러 나온다. 그러면 좀 어떤가. 그런 성격 덕분에 성공하여 부를 이뤘고, 그 인색함 때문에 큰 재산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공공사업에 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라이 브로드의 만수무강을 빈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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