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혐오조장 지도자들의 죄악

2019-07-24 (수) 12:00:00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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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인종 민주당 여성의원들을 향해 트럼프가 트윗으로 날린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의 파장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발언을 빌미로 제기된 연방하원의 탄핵안이 압도적 표차로 폐기되자 트럼프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고 유세를 통해 여성의원들에 대한 비난을 계속 이어갔다. 유세장은 “돌려보내라”는 연호로 뒤덮였다. 군중들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자 트럼프는 “그 구호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이런 일련의 상황 전개는 트럼프의 전형적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슈를 이슈로 덮어 버린 후 자신은 은근슬쩍 발을 빼는 ‘치고 빠지기’다. 시민권 문항을 센서스에 포함시키려던 시도가 연방대법에 의해 좌절돼 자신의 스타일이 구겨졌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뜬금없이 민주당 여성의원들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트윗을 날림으로써 선행 이슈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골수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대중 심리조작에 상당히 능하다. 그가 가장 빈번히 꺼내드는 카드는 두려움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그는 이민자와 테러리스트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대중의 불안을 자극해왔다. 이런 불안이 혐오로 바뀔 때까지 비난을 지속하고 반복한다. 대중에게 혐오의 대상을 던져줌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극우의 방식이다. 극우는 혐오의 토양 위에서 확산된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발언에 어떻게 반응할지 트럼프가 모를 리 없다. 막말 사태는 계산된 도발이다.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에 그는 아주 단순한 논리로 대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다”라는 게 그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마치 그의 뇌리에 ‘디폴트’로 자동 설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만한 어떤 객관적 증거나 수치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냥 많은 이들이 자신과 생각이 같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발언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히틀러가 “많은 독일인들이 나와 생각이 같기 때문에 유대인 학살이 아니다”라고 우겨도 달리 반박할 말이 없다.

극우는 이렇듯 단순한 논리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면서, 생각하기 귀찮아하고 비이성적 주장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대중을 호도하며 선동한다. 그런데 그 주체가 국가지도자들일 경우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갈등의 중심에 바로 이런 극우 지도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지도자의 영향력은 일반 개인들의 그것에 댈 바 아니다. 그래서 국제인권단체인 ‘아티클 19’이 발표한 선동 테스트는 ‘발화자의 공식적 지위와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혐오표현이 지닌 선동성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트럼프의 발언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혐오조장 선동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트럼프뿐인가. 일본의 아베가 조장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혐오감정 또한 트럼프의 경우 못지않다.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정책으로 혐한시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암묵적으로 지지해온 아베가 이제는 궁색한 논리의 경제보복을 통해 혐한감정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러자 일본 극우언론들은 마치 망둥이가 뛰듯 아베정권의 입맛에 맞는 온갖 황당한 주장을 쏟아내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2017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은 수상 연설에서 장애인을 비하한 트럼프를 언급하며 “공인의 발언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당신들 또한 그렇게 해도 된다’는 허가를 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당연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언행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른다. 하물며 국가지도자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개인의 욕망과 국가적 야욕을 위해 혐오조장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와 아베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한국의 극우세력 지도자들 또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 등 마이너리티를 향해 드러내는 차별적 인식은 언제든 혐오발언과 선동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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