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민정수석 “애국 아니면 이적” 이어
▶ 이인영 “우리 선수 비난하면 신(新)친일”, 나경원 “무능·무책임 덮으려는 일본팔이”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22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안으로 들어가 일본 경제보복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
여권이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를 계기로 ‘반일(反日) 대 친일(親日)’ 프레임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수 야당과 비판 언론을 친일 세력으로 몰아붙이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연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의 대일본 정책을 비판하면 친일과 이적(利敵)’이라는 취지의 글을 띄우고 있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소개한 것을 비롯해 열흘 동안 페이스북에 40여건의 게시물을 올리며 보수 야당과 비판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 이에 야당은 “여권이 반일을 총선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 수석은 2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비방·매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일지 몰라도 무도(無道·도리를 어겨 막됨)하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조 수석은 18일 저녁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경제 전쟁’이 발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고 썼다.
조 수석의 글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회동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초당적으로 대처하자는 공동발표문을 내놓은 직후에 올라왔다. 일본을 ‘적’으로 규정한 뒤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조 수석은 21일에는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400여년 전 임진왜란과 1000년 전 거란의 침략에 비유하면서 문 정부 스스로를 이순신 장군과 거란 침입 때 외교 담판을 벌인 서희로 추켜세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도 21일 “경제 한·일전(戰)에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新)친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이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안 증액을 막는 것을 ‘신친일’로 규정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22일 회의에서도 “한국당은 왜 국민들이 ‘일본을 위한 엑스맨’이라고 비판하는지 자신들의 언행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공격했다.
조 수석의 여론전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평가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박범계 의원은 YTN 라디오에 출연해 “조 수석이 오죽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라며 “국민이 가진 비분강개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공직자로서 갈등을 오히려 확산시키는 역할은 적절하지 않다”며 “한일 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단정해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청와대와 여당이 총선용 반일·친일 프레임을 설정하고 반대 세력에 무조건 ‘친일’ 딱지를 붙이고 있다”며 “외교적 해법은 뒤로 미룬 채 국민 편가르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대일 강경 대치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한편 경제 실패 책임을 일본의 보복으로 돌리려는 전략을 펴는 것 같다”면서 “조 수석은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발언으로 오히려 이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정권의 대응은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간 구한말의 쇄국 정책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조 수석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 정부는 국난 극복 의지가 없고 오로지 머릿속에 총선만 있는 것 같다”면서 “2년 내내 ‘북한 팔이’만 하던 정부가 이제 무능과 무책임을 ‘일본 팔이’로 덮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국민 감정을 선동하고 정치권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계속해 우려된다”고 말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조 수석이 문재인정부의 대일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친일·이적 행위자로 몰아가는 것은 비열하고 한심한 편 가르기”라고 성토했다. 그는 “조 수석이 계속 자극적 발언을 하려면 사표를 쓰고 자연인으로서 마음껏 하라”고 지적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우리는 할 수 있다”며 극일 의지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전자·반도체·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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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