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한 중년 남성이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목수라고 했다. 미국 목수는 연장 쓰는 것만 배우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은행원이었다가 이민 와서 목수가 됐다는 그는 ”영어 못하고 특별한 기술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목수 일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신문 ‘사람 사람들’ 난을 통해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그에게 걸려온 전화가 600통을 넘었다고 한다. 꽤 오래 전 이야기지만, 그의 말대로 영어 못하고 기술 없어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중장년 한인 남성들이 그렇게 많았다. 기사에 나간 전화가 업체 전화여서 밀려드는 전화 때문에 그는 한동안 비즈니스에 큰 지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달 미국의 실업률은 3.7%. 이 정도면 사실상 완전고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표상 고용시장은 호조지만 숫자와는 다른 것이 현장 상황이다. 예컨대 요즘 한창 수요가 많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취업이 쉬울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2년 정도의 경력이 없으면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어디서 2년 경력을 쌓느냐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 학과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청년 실업자로 지내다가 동부에 있는 직업학교를 거쳐 취업하는 경우도 봤다. 버지니아의 이 인코딩 스쿨에는 대학원 졸업생이 등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어느 집 자녀는 대학 졸업하고 연봉이 수십만 달러라더라 라는 이야기는 어쩌다 화제가 되는 지극히 드문 일이고, 대부분 보통의 젊은이들인 우리 자녀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의류업체가 빼곡히 입주해 있는 다운타운의 ‘페이스 마트’에서 미세스 홍이라고만 알려지기를 원하는 50대 초의 여성을 만났다.
“여자도 벌어야 먹고사는 미국에 왔는데, 기술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이민 초기의 답답함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커 가는데 남편 혼자 벌이로는 생활이 힘든 날이 계속되다가 신문에서 무료 기술교육 기사를 읽게 됐다. 짧은 기사 하나가 그의 이민생활에는 전환점이 됐다.
손재주는 있는 편이지만 재봉틀에 실 꿰는 것도 몰랐다는 그는 기술학교에서 1년, 이 업계에서는 ‘어시’로 불리는 인턴 1년을 거쳐 패턴사가 본을 떠 주면, 본에 따라 천으로 샘플을 만드는 샘플 메이커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샘플 메이커 13년 차로, 패턴사와 동업으로 패턴 서비스사를 차린 그는 한 주에 보통 1,500 ~ 2,000달러, 최고 2,500 달러 정도를 번 적이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미세스 홍을 소개해 준 한인 직업교육센터의 엄은자 원장은 젊은 사람들은 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패턴 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샘플 메이커나 옷 치수를 늘리는 그레이딩, 원단에 본을 그리는 마킹 등은 나이 든 사람도 취업이 용이하다고 귀띔한다. 의류업계에서는 돋보기를 콧등에 얹고 일을 하는 연세 지긋한 분이 드물지 않을 정도로 정년 압박도 덜하다고 한다.
월 4,000달러 정도 된다는 렌트비 압박에도 소명처럼 무료로 직업교육을 이어가고 있는 한인 직업교육센터의 졸업생은 지난 14년간 2,600여명. 초기이민자가 30%, 단순노동에서 전업하려는 이가 70% 정도 비율이고, 개중에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도 있다.
‘포에버 21’ 같은 거대 유통업체의 위기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LA의 의류업체는 한인업체 350여 곳을 포함해 2,500개 가까워 인력수요는 여전하다는 전언이다.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맞춰 의류업계에서는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나 피트 테크니션 등 새로운 직종도 꾸준히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 경영난을 겪는 한 작은 회사를 나와야 했던 후배가 패턴사로 전업하는 과정에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후배는 인문학을 공부했지만 한국 대학의 인문학이 밥이 되지 않는 미국에서 도전해 봄직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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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