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직장 문화 이제 달라져야

2019-07-17 (수) 한형석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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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거세게 일었던 미투 바람이 한 풀 꺾인 모양새지만 한인 사회에 일상화된 직장 성희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역시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야”라거나 “자연산이 최고”라는 식의 농담도 아니고 유머도 하닌 무개념 언사들이 공개석상에서 일상으로 오가는 한인 직장들은 여전히 미투의 사각지대에 있다.

얼마 전 한 LA 한인업체에서는 고위간부가 여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저히 글로 옮기기 힘든 성희롱성 ‘농담’을 했다가 여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일부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고위간부는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이 한인 업체들의 직장 문화를 보여준다.


피해 여성들의 ‘미투’ 고백이 잇따라 터져나오던 지난 2017년 LA 한인 업체들에서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한인 직장들에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성희롱 사건은 한인 업체들의 직장 문화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한인가정상담소가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접수한 한인 성희롱 및 성폭력 관련 피해 사례를 보면 대부분이 직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직장에서 직위를 이용한 간부 사원들의 여직원 성희롱 피해나 동료 남성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한인 여성들의 사례가 대다수였을 정도로 한인 업체들의 직장 성문화 인식수준은 밑바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상담전문가는 “직장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하거나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실제 한인 직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직장조직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 신뢰하지 못하는데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손가락질을 당하고, 2차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도리어 이를 감추고 숨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도를 넘는 성희롱 발언을 한 가해자는 자리를 보전하고, 피해 여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 현재의 한인 직장 문화라는 것이다.

한 상담전문가는 “한인 회사들이 성희롱 실태를 알면서도 감추기에 급급하다”며 “이것이 한인 업체들의 직장문화의 현주소”라고 지적한다.

성희롱 문제를 감추기만 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성희롱 문제에 눈감는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잃을 수 있고, 능률이 저하되며, 소송으로 인한 막대한 시간과 비용 부담으로 최악의 경우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성희롱을 농담이라며, 성추행을 친근감의 표시라고 둘러대는 직장문화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시대이다.

<한형석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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