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초기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40%대 후반에서 횡보를 거듭하며 좀처럼 50%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고용 등 경제부문 수치와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문재인 정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형국과 일부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와 관련해 일부 야당과 언론은 연일 ‘위기’ ‘폭망’ ‘패닉’ ‘참사’ 등 공포를 자극하는 어휘로 가득한 비난과 보도를 쏟아낸다. 이들의 이런 비난과 보도를 접하고 있으면 당장 나라 경제가 절단 나고 무너질 듯한 두려움이 절로 생긴다. 이런 심리의 확산이 목적이라면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치에서 ‘협치’와 ‘초당적 협력’ 같은 단어들은 점차 화석화되고 있다. 오로지 상대 죽이기만 난무할 뿐이다. 상호협력을 통해 국민들의 안위와 복리를 증진해가는 ‘플러스 정치’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진지 오래고 상대의 실책과 실수를 유도해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마이너스 정치’만이 횡행하고 있다.
모두가 입만 열면 국민과 민생을 외치는데 하는 행동들을 보면 전혀 국민들을 생각하거나 민생을 걱정하는 사람들 같지 않다. 당리당략만 있을 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서로 싸우다가도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힘을 합해 먼저 살리고 보는 게 인간됨의 기본일진대 일부 정치권은 고통에 신음하는 이재민들을 살리기 위한 추경과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외면한 채 명분 없는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 외에는 자력으로 지지율을 견인할만한 실력이나 철학이 부족하니 이런 어깃장을 놓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국민들의 처지를 최소한이나마 헤아린다면 지금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어 경제정책을 실패하게 만들겠다는 속셈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보수언론들은 경제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보도들을 통해 정치권의 이런 태도를 한껏 부추긴다. 기-승-전-최저임금 혹은 기-승-전-소득주도성장이다. 모든 걸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최저임금 때문에 상권이 죽었다는 기획기사를 내보내면서, 인적이 끊긴 새벽 시간대 사진을 집어넣는 교묘한 편집으로 마치 상권이 완전히 죽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전형적 수법이다.
한 매체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최저임금 관련 보도가 1,000회를 넘었다는 조사도 있다. 최저임금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정상적이라 볼 수 없는 보도행태다. 이런 보도를 그대로 옮겨다 읊어대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얼마 전 제화거리를 찾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제화공들은 최저임금과 관련 없는 특수고용직이란 사실을 모른 채 “제화거리가 어려운 것은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황당한 발언을 했다가 경제를 너무 모른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이런 융단폭격 식 보도가 초래한 부작용의 하나다. 금년도 최저임금 협상에 사용자측이 350원 삭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안을 들고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정치세력과 언론으로부터의 내부 공격에 더해 이제는 일본으로부터도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아베의 무역보복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베의 노림수는 반 문재인 세력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단기적으로는 참의원 선거를 위한 정치적 책략이지만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는 한국경제를 흔들어 다음에 친일적인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판을 깔겠다는 계산까지 보인다. 그런데도 한국의 자칭 보수는 일본이 아닌 한국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일본 속셈에 호응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공포를 확산시켜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 일시적으로 반사이익은 챙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게 된다는 걸 진보와 보수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결국 이런 사악한 권력싸움에 등골 휘어지고 녹아나는 건 국민들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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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