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

2019-07-09 (화) 12:00:00 Mark St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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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최성호 ‘추억’

방 한 가운데로 들어가 나는 그를 불렀다
“여기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그를 발견했다,
보석이 박힌 왕관과
가장자리에 족제비털 장식을 한 가운을 입은
그는 작아보였다. “난 이제 군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는 말했다 “나의 왕국에는 너 밖에 없는 걸.
네가 하는 일은 나를 찾는 일 뿐이고” “하지만 왕이시여,”
“왕이라 부르지 마” 하고 말하더니 그는
머리를 한 쪽으로 떨어뜨리고는 눈을 감았다
“저기” 그가 속삭였다 “저 것 같아” 그리고는
이내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한 마리 쥐처럼

Mark Strand ‘왕’ 전문
임혜신 옮김

마크 스트랜드가 일흔이 넘어 낸 시집의 첫 장에 실린 시이다. 이 시에는 왕, 왕을 찾는 신하, 그리고 쥐가 등장하는 데 모두 한 인물이다. 군림하던 왕과, 그를 받들던 신하,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한 마리의 쥐는 시인 자신 속의 배우들인 것이다. 더 이상 군림할 의지가 없는 왕은 욕망을 놓고 노년의 무의미 속에 몸을 맡긴다. 왕관을 쓰고 왕의 가운을 입었지만 신하도 백성도 영토도 없다. 사라지는, 잊혀지는, 죽음을 향해가는 그 모습이 그러나 초라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그가 입고 있는 옷이 왕의 가운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제 3자처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온다. 생이라는 권력을 놓고, 꿈을 꾸듯 자신의 왕권 양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다. 슬픈 상황이지만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초월이란, 바로 직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임혜신 <시인>

<Mark St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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