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의 중산층

2019-07-09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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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정국은 돈 벌 궁리만 하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써보냈다.

“20여년 동안 어렵사리 노력하여 이제 겨우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있으나, 눕고서도 남는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 옷이 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는 밥이 있소.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쪼일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할 것이요.”

500년전 우리나라 사대부가 가졌던 만족스런 삶의 조건, 즉 중산층의 개념이다. 요즘 시시때때로 중산층의 의미와 기준에 대한 보도가 나오지만 이처럼 멋있고 기품 있는 정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본래 중산층의 정의는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 되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집단”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중산층의 개념은 수입과 재산 등 경제적인 기준에 따라서만 분류된다. 그것도 나라마다 연구기관마다 기준이 모두 달라서 중산층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도 연방빈곤선(2019년, 4인 가족 2만5,750달러)은 매년 조정해 발표하지만 중산층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아마 공식수치가 나온다 해도 개개인이 심정적으로 느끼는 중산층의 둘레는 또 다를 것이다. 아울러 시대가 급변하고 있으니 이제 그런 계층 분류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고, 빈부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는 서민층과 최상류층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13년 오바마 케어가 의회를 통과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 중산층의 기준으로 “주택을 소유하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의료보험과 퇴직연금에 가입해 보장을 받고,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표된, 한 투자전문지가 설문조사를 통해 산출한 미국 중산층의 기본조건은 ‘제때 각종 청구서를 갚을 수 있는 능력, 안정적인 직업, 저축할 수 있는 여력, 휴가를 갈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 최소 1,000달러의 저축액’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경제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지면 중산층으로서의 삶이 만족스러울까? 김정국의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은 어디로 갔을까?

퐁피두센터는 파리에 모든 형태의 현대 예술작품이 모여 있는 문화센터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했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은 현대미술관이다. 문화예술에 남달리 조예가 깊었던 퐁피두 대통령은 1969년 공약집에 담았던 ‘삶의 질’에서 중산층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할 줄 알고, 자신만의 요리 레서피가 있어야 한다. 또 사회적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고,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하는 중산층의 기준 역시 경제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페어플레이를 할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와 불법에 의연하게 대처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친다는 중산층의 기준은 이렇다.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매이지 않고 각자의 형편과 가치관에 맞는 자신만의 중산층 기준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일년에 음악회와 전시회를 한번씩 정도는 다녀오고, 오스카 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영화 몇 편은 극장에 가서 보며, 가끔 자신을 위해 맛있는 와인 한 병을 딸 수 있고, 깊이 빠질 수 있는 취미가 한가지쯤 있으며,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대상이 있는 삶…’ 이건 내가 만들어본 중산층의 조건이다.

자기하기에 따라서 넉넉하지 않게 살아도 ‘정신의 상류층’이 될 수 있고, 호화주택에서 명품을 휘감고 살아도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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