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의 힘

2019-06-19 (수) 하은선 사회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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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카운티뮤지엄(LACMA) 기획전 ‘선을 넘어서: 한국 글씨 예술’은 대한민국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헤집고 다닌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무심히 스쳐갔던 지방 박물관의 국보급 유물들이 LACMA에 와서 그 유려한 빛을 발한다.

신석기시대 유물로 표기된 국보 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압도적인 웅장함에 긍지가 절로 느껴지는 고구려시대의 광개토대왕비 탑본은 이천의 월전미술관에서 대여해왔다. ‘신사임당 유목’과 ‘이승만대통령유묵’은 부산의 동아대 석당박물관에서 왔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 시대 사활을 걸고 찾아내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한국내 유일본 ‘훈민정음’은 한국 밖으로 나올 수 없어 팩시밀리본이 전시됐다. 조선시대 노비들의 ‘한글 계문서’라는 노비상계문서와 나란히 전시된 1895년 ‘유진사댁 전답매매명문’은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아카이브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천 김종원 서예가의 ‘문문자자 금강경 그 서적 변상’(2014)에 한없이 빠져 들었다. ‘문문자자’ 시리즈는 문자 사이에 ‘무늬’와 ‘우거지다’란 글자를 넣었기에 의미 그대로 문자의 무늬가 우거진 작품이다. ‘금강경 그 서적 변상’은 금강경을 읽은 뒤의 느낌을 그림글씨로 빼곡히 써내려갔기에 붙은 부제다. 이 작품은 초대형 부적을 보는 듯 한데 글씨 사이로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얼굴들이 ‘금강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성의 질서뿐 아니라 혼돈의 주술성까지 포용해야 된다는 김종원 서예가의 믿음이 문자조형시를 만들어냈고 그림 같은 글씨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LACMA 한국서예전 개막을 축하하며 소헌 정도준 서예가가 양 손으로 사람 키 만한 붓으로 큰 글씨 퍼포먼스를 펼쳤다. 초대형 화선지 위에 힘찬 붓놀림으로 써내려간 한글 글자는 ‘문화의 힘’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 중 가려 쓴 그의 작품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쓰여진 한글 글씨 중 네 글자다.

LACMA에서는 ‘관해정’(Generous Heart and Small Pavillion)이라는 작품으로 소헌 정도준 서예가의 글씨 예술을 만나지만, 그가 우주에서 가장 큰 붓을 가져와 미국인에게 보여준 개막 퍼포먼스 큰 글씨는 아시아권 밖에서 처음으로 열린 한국서예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9월29일까지 계속되는 LACMA 한국서예전이 한국 문화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하은선 사회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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