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련암 예부터 고승들의 수행처로 사용 성철스님, 입적 직전까지 기거
▶ 수험생 엄마 ‘기도명소’ 희랑대 혜암스님이 거취했던 원당암 등 사연 품은 16개 암자 곳
경남 합천 해인사 인근 암자들
올해 봄 서울 성북구의 길상사를 취재했을 때 이 절이 전남 송광사의 말사(末寺)라는 사실을 알고 의아해 한 적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의 말사가 왜 서울에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본찰과 말사는 지리적 인접성과 무관하다는 사실, 송광사 소속인 법정 스님이 대원각을 시주받아 그 땅에 절을 지어 송광사의 말사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달에는 경남 합천의 황매산 철쭉을 취재하러 갔었는데 시기를 잘못 맞춰 꽃구경은 못 하고 해인사 인근의 암자들을 둘러보고 왔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황매산 철쭉 대신 해인사의 말사와 암자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아 보려고 한다.
해인사는 우리나라의 법보(法寶)종찰이다. 불교에는 세 가지 보물, 즉 삼보(三寶)가 있다. 불보(佛寶)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석가모니를 말하며 승보(僧寶)는 부처의 교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중생에게는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벗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법보는 ‘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명한다’는 뜻이다. 합천 해인사가 법보사찰인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대장경(大藏經·국보 32호)’을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통도사·해인사·송광사를 일컬어 삼보종찰이라고 부른다. 그중 법보종찰 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 장경판전을 비롯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 외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 30여점이 산재해 있음에도 관광객들은 합천을 방문하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만 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해인사에 깃든 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근의 암자들을 둘러볼 만하다.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열두 번째 본찰로 전국에 걸쳐 말사 151개와 암자 16개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중 합천에는 고불암·고운암·국일암·금강암·금선암·길상암·백련암·보현암·삼선암·약수암·용탑암·원당암·지족암·청량사·홍제암·희랑대 등 16개의 암자가 반경 5㎞ 안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 암자를 둘러보기 위해 발길이 먼저 머문 곳은 희랑대. 국가고시를 보는 사람이 합격을 기원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희랑대는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한 희랑 대사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희랑대사 근칠좌상 가슴에는 붉은 점이 또렷했다. 이 점의 연유를 동행한 정해식 해설사에게 묻자 “절에 모기가 들끓어 스님들의 기도 정진을 방해하자 가슴에 피를 내 모기들이 빨도록 한 것”이라며 “희랑대사 근칠좌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목불이 아니라 마른 헝겊에 옻칠을 하고 감아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인사는 성철·일타·혜암·명진·자운대율사 등을 배출한 절로도 유명하다. 그중 혜암 스님이 거했었다는 원당암에 들러보니 암자마당 돌탑에는 혜암의 휘호가 일필휘지로 새겨져 있다. 원당암에서 공부하고 기도발 좋은 희랑대에서 기도하는 원스톱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등산이라도 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백련암이 준비돼 있다. 백련암은 해인사의 암자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주변에 노송과 환적대·절상대·용각대·신선대 같은 기암들이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가야산 최고의 절경으로 꼽혀왔다.
백련암이 세워진 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선조 38년인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 스님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 그보다 이전에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련암은 고승들의 수행처로 비교적 최근에는 성철 스님이 입적하기 전까지 기거했다.
오래된 암자로는 신라 왕실의 원찰이었던 원당암을 꼽을 수 있다. 원당암은 본절인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조 때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기거했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현재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암 스님이 도량의 면모를 일신했다. 원당암에는 보물 제518호로 지정된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금당의 축대석 등이 사적으로 분류돼 있다.
지족암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철종 7년인 1856년에 추담대사가 창건했고 고종 30년인 1893년 환운 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지족으로 이름을 바꿨다. 최근에는 일타 스님이 머물면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했다는데, 근처 바위에는 일타 스님이 수도정진을 하며 새겼다는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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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합천)=우현석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