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 소아과협회는 새로운 정책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소아과협회는 6만7,000명의 소아과 전문의를 회원으로 가진 거대 단체이다. 소아과협회가 새로 발표한 정책적 입장은 “자녀체벌은 교육적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의 엉덩이나 뺨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랑의 매’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똑 부러진 입장 표명이었다. 소아과협회가 지난 1988년 발표했던 “부모들은 체벌이 아닌 다른 훈육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뜨뜻미지근한 내용의 성명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소아과협회의 성명발표는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자녀체벌의 해악이 잇달아 규명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에는 자녀체벌을 금지하는 연방법이 없다. 다만 주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관련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방법으로 신체에 상해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가해지는 교육적 체벌은 허용하는 일부 주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규제와는 별개로 자녀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미국가정들이 여전히 많다. 특히 기독교 전통이 강한 남부 ‘바이블 벨트’에서 그렇다. 아마도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성경 잠언 13장24절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녀체벌과 관련한 인식은 당연히 문화적 종교적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게 돼 있다. 가부장적 유교사회의 인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가정 내 자녀체벌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자녀를 독립된 개체가 아닌 소유물로 여기는 비뚤어진 사고에서 비롯된 일그러진 현상이다. 이런 인식과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미국으로 건너와 자녀를 때렸다가 어려움을 겪는 한인부모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녀체벌에 관대했던 한국사회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 한국정부가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혹은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민법 제915호를 고쳐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놓여있던 걸림돌 하나를 치워버린 느낌이다.
그렇지만 인습의 힘은 대단히 완고하고 끈질기다.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한국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여전히 75%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치원 등 교육시설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이 필요한가를 물었을 때는 찬성이 25%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자기는 순수한 사랑과 훈육 목적에서 아이들을 때리지만 교육기관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즉 같은 행위에 대해 자기와 남의 동기를 다르게 해석하려는 흔한 오류가 나타난다.
그러나 화풀이의 감정을 싣지 않고 정말 순수한 동기에서 자녀에게 ‘사랑의 매’를 드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물론 학교에서 행해지는 폭력성 체벌보다는 좀 더 애정이 담겨 있을지 몰라도 화풀이와 훈육행위 사이의 구분과 경계는 너무 모호하다. 그리고 그런 모호함은 언제든 학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통상적으로 한 사회의 체벌 찬성률과 살인율은 궤적을 같이한다고 한다. 아동학대는 피해자의 DNA에 메틸화(methylation)라는 변형을 일으켜 후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난해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연구보고서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런 관문은 아예 닫아버리는 게 가장 안전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체벌 연구자로 꼽히는 텍사스대학의 발달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는 “나는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 자랐다. 나는 안전벨트를 안 맸기 때문이 아니라 안 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이 자란 것”이라는 비유를 들려준다. 마찬가지로 만약 체벌을 당한 경험이 있는 당신이나 당신 자녀들이 별다른 일 없이 컸다면 그것은 체벌 때문이 아니라 체벌에도 불구하고 잘 자란 것이라 말해야 옳다는 것이다.
‘…때문에’ 잘 자라야 할 아이들이 ‘…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야만 하는 가정과 사회라면 어떤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결코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들 사이의 폭력은 엄하게 처벌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같은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이중 잣대를 이제는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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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