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 카린 ‘미래와 희망’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
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
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
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
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 더욱
박라연(1951-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전문
산동네 찬 달빛 아래로 현실인 듯 환상인 듯 먼 옛날의 사랑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순정을 잃어가는 시대라지만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니 사랑 중에 으뜸은 역시 평강공주와 온달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고통을 원하지 않는 현명한 현대인들은 사랑조차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지. 평강이 있을까, 아직? 온달이 있을까, 아직?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우리에겐 여전히 설화가 있고 그 설화가 살아가는 시적인 세계가 있고 달빛 아래 허물어진 사랑을 더듬는 갈망의 나무들이 있다. 그러니 그대여, 사랑하고 싶다면 부디 모든 것을 벗어 가난해지기를. 오직 낮고 가난한 영혼에만 사랑은 깃들어 그 신비한 꽃을 피우나니.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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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라연(1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