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며 지인이 한 뉴스를 링크해 보내줬다. ‘애드 위크’라는 잡지에 실린 2018년 미국 케이블 뉴스 시청률 순위였다. 상위 30개 프로그램들 가운데 폭스뉴스가 14개, MSNBC가 13개를 차지한 반면 한때 케이블 뉴스의 대명사로 불렸던 CNN은 고작 3개에 머물렀다.
상위권에는 폭스뉴스가 많이 포진했지만 MSNBC 역시 프로그램 숫자와 시청률에서 폭스에 버금가는 성적표를 받았다. 폭스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뉴스채널이다. MSNBC는 리버럴의 아성이라 불릴 정도로 진보적 색채가 가장 두드러진 케이블 채널이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뉴스채널이 시청자들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CNN의 성적표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다. 30위권 프로그램이 단 3개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순위까지 밑바닥이었다. CNN은 중도를 표방하는 뉴스채널이다. 걸프전 당시 이 케이블 방송이 누렸던 인기와 신뢰를 떠올린다면 정말 믿기 힘든 추락이 아닐 수 없다.
CNN의 추락은 모든 것들이 점차 이분법적 극단으로 치닫는, 그래서 가운데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미국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때 중도는 충돌의 완충지대로서, 그리고 타협을 위한 조정공간으로서 중요성이 컸지만 이제는 극단의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돼가고 있다.
케이블뉴스 시청률 순위가 보여주듯 언론지형 속에서 중도가 설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돼 온 대립과 증오의 정치 속에서 뉴스수용자들의 입맛은 자연스럽게 짜고 매운 자극적 정치에 길들여졌다. 그러다보니 담백한 정치, 담백한 주장은 이들의 성에 차지 않는지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외면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른바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보수신문들과 ‘한경오’로 통칭되는 진보신문들 사이에서 중도매체들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중도적 취재원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언론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인사들과 연구기관들만 편향적으로 인용한다. 미국의 진보적 언론에는 좌파적 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가 집중적으로 인용되는 반면, 보수언론들에는 우파성향 연구소인 헤리티지 재단과 미국기업연구소가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된다는 연구조사도 있다.
양극화되고 있는 정치와 편향적 언론 간에 ‘되먹임’이 지속되면서 사회는 봉합하기 힘들 정도로 갈라지고 있다. 과연 봉합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걱정될 정도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분위기는 구체적 자료로 확인된다. ‘사회적 포용’ ‘사회갈등과 관리’등 4개 영역 지표값을 근거로 산출한 OECD 사회통합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30개국 가운데 29위, 미국은 27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는 거부한 채 매일 싸움질만 하는 두 나라의 정치는 분열의 상징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도무지 희망의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적인 반대와 맹목적인 진영논리 추종이 있을 뿐이다. 파편화의 사이클에 휘말린 유권자들도 그런 인물들을 뽑아 의회로 보낸다. 미국의 경우 연방의회 의원들 가운데 중도로 분류되는 인물은 이제 5%도 안 된다. 그러니 타협의 정치가 힘들 수밖에 없다.
중도의 붕괴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당장 정치의 실종은 물론 국가기능의 마비까지 초래할 수 있다. 각국이 비슷한 상황에 빠지면서 나라들 간의 국제적 협력도 예전만큼 유기적이지 못하다. 이번 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결과 역시 양극화의 심화로 요약된다. 극우와 진보가 약진하면서 좌우 중도는 소수파로 전락했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사소한 이견과 갈등도 곧바로 충돌이 된다. 중도가 실종된 정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권력 순환이 이뤄진다 해도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조울증 정치’가 되기 쉽다. 이런 정치로는 지속적이고도 합리적인 개혁이 불가능하다.
20세기의 위대한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위대한 용기는 위대한 기회주의자”라고 말했다. 자신의 진영과 이념에 갇히지 않고 진실과 보편적 공익을 앞세우는 소신 있는 정치인들이 늘어날 때, 그리고 이들을 가려내고 선택할 줄 아는 국민들의 식견이 뒷받침될 때 정치는 비로소 희망의 영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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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