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2019-05-16 (목) 12:00:00

이나경 ‘경치’
오월의 첫 날이었지
아름답고 따스한 봄날
나는 술에 취해 거만하게 거리를 활보했지
하지만 다리는 몹시 비틀거렸기에
물받이통 옆에 주저앉았어
그때, 돼지가 다가와 내 옆에 눕더군
그래, 나는 거기 물받이통 옆에서
끝낼 수 없는 생각에 잠겨있었지,
한 여인이 지나가며 말했지
“누구랑 술을 마시는가를 보면
그가 누군지 알지” 그러자
돼지는 천천히 일어나 멀어져 갔지
무명씨‘돼지’ 전문
임혜신 옮김
참 아름다운 봄날, 그는 대체 무슨 사유로 술에 취에 비틀거리며 거리를 헤매었을까. 취하지 않고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철학적 사유일까, 중독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다는 실존적 사유일까. 5월의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세상의 그중 낮은 곳에 쓰러져 누운 자의 서정을 통해 보는 존재의 컴플렉시티, 그것은 쓸쓸하기도 하고 또 인간적이기도 하다. 돼지에게조차 밀렸지만, 그는 최소한 이름도 붙이지 않을 시를 쓰지 않았는가, 이 아름다운 봄날에. 그가 일어나 시보다 더 잘 살아갔으면 싶다. 임혜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