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이유

2019-05-15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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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박물관 건립에 256만 달러를 쾌척한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이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이런 언급은 자신의 지금을 있게 해준 성공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 만큼 그 실과를 같이 나누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 날 한국일보에 실린 ‘제2, 제3의 홍명기를 기대한다’는 제목의 특별사설은 “자신이 성취한 성공의 바탕을 되돌아보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되돌아봐야할 성공의 바탕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바로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홍 이사장의 말 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성공은 온전히 그 한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큰 성공일수록 더욱 그렇다. 무수한 세대, 무수한 이들에 의해 오랜 세월 축적되고 만들어져온 지식과 시스템,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타인들의 직·간접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잘났어도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모든 성취를 이룰 수는 없다.


내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은 지난 2012년 한 유세 연설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이 나라에서 혼자 힘으로 부를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기에다 공장을 지었다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여기 우리가 낸 세금으로 건설한 도로를 통해 상품을 시장으로 운반할 것입니다. 역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가르친 직원들을 고용하겠죠. 공장은 안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유지하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부자들은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저 홀로 잘나서 성공한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인색하게 군다.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비판적 관점에서 분석해오고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인 코넬대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착각은 자신이 성공한 이유가 오로지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여기에 더해 성공을 겸손하게 받아 들여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되는 것은 행운의 역할이다. 행운은 인생의 중요한 성취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재능과 노력 없이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 주변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는 데도 그에 상응하는 성공과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장 먼저 등장해 가장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행운의 요소는 출생이다. 경제학자 블란코 밀라노비치는 부모와 자녀 소득 사이의 상관관계가 키의 유전적 영향성과 거의 같음을 밝혀냈다.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 ‘금수저’ ‘흙수저’보다 더 강력하게 와 닿는 비유는 없다.

물론 재능과 노력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최선을 다하는 데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행운의 역할은 더 커진다. 가장 유능한 사람보다 가장 운 좋은 사람이 성공하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공을 설명할 때 행운을 언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자서전을 살펴보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의 도움’과 ‘행운’이 없었다면 성공이 어려웠을 것이란 인식은 성숙한 부자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태도이다. 성공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는 개인적으로는 적극적 기부와 나눔으로, 제도적 영역에서는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면 이런 자각이 약한 부자들은 종종 다른 이들의 처지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공감능력의 결핍을 드러낸다. 납세부담을 꺼리는 것은 물론 저소득층 복지조차 못마땅하게 여기는 편협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언젠가 워렌 버핏은 “오늘 누군가가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오래 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란 말을 했다. 이처럼 나무 그늘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들과 후대를 위해 지금 나무를 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자 당연한 책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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