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반이민과 인종주의

2019-05-08 (수)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작게 크게
불체자 단속에 초점을 맞추던 트럼프 ‘반이민’의 칼끝이 합법 이민자로 옮겨가고 있다. 합법적으로 영주권를 취득한 이민자도 복지수혜를 받았다는 이유, 다른 말로 풀자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추방시킬 수 있는 반이민의 노골적인 민낯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지난 3년간 날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반이민 정책’은 혹시 ‘종교적인 열정’이 아닐까 싶을 만큼 끈질기고 집요하기까지 하다.

‘종교적 열정’을 떠올릴 만큼 트럼프 행정부를 ‘반이민 외골수’로 만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트럼프 반이민 정책의 시작과 그 배경을 쫓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형태를 달리하며 생명을 이어 온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역사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로 포장했지만 드러나는 모습은 낯빛을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는 포장된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반이민’이 사실은 인종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미국 이민과 인종 역사’의 저자인 대니얼 오크렌트도 트럼프 반이민의 핵심을 인종주의로 짚어냈다. 오크렌트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현 백악관 정책의 심장부에 도사리고 있는 ‘열정적인 반이민’은 바로 인종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정치주류가 물들어 있는 ‘외국인 혐오’와도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반이민’은 사이비 과학 ‘우생학’에 바탕을 둔 인종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통박했다.


인종주의의 뿌리는 이민법 변천사에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인종주의에 근거했던 초기 이민법이 한인 등 아시아계를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차별해왔다는 것이다. 특정 인종을 명시적으로 배척하는 내용의 첫 번째 이민법이 바로 아시아계 특히 중국인을 표적 삼은 1882년의 ‘중국인 배척법’이었다. 이 법은 1917년 소위 ‘문맹자 이민금지법’로 확대됐다. 겉은 문맹자의 이민과 귀화를 금지한 법이었지만 사실은 ‘아시아계 이민금지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 법은 중국, 인도, 아랍, 아프가니스탄, 우랄산맥 동쪽 등을 금지지역으로 명시해 아시아계이민을 철통 봉쇄했다. 일본과 필리핀은 1924년 개정 이민법에서 금지구역에 포함돼 이민과 귀화가 금지됐다. 이 법은 정신병자, 간질환자, 매춘부, 극빈자 등을 이민금지 대상으로 명시했지만, 아시아계는 출신 지역만으로 이민을 금지할 수 있었다. 정신박약, 정신병자, 전염병 보균자, 매춘부 등과 동일선상에서 아시아계가 놓여 있었던 셈이다. 물론 한인도 포함됐다.

금지가 풀린 것은 30년이 다 지난 1952년이었다. 현행 이민귀화법의 모태가 된 ‘매캐런-월터법’은 ‘귀화의 특전을 일본, 한국 그리고 여타 아시아인들로 확장한다’고 명시해 중국인 배척법이 제정된 지 70년 만에야 특전을 베풀 듯이 아시아계 이민금지를 해제했다. 미국 반이민 역사가 한인 등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과 배척의 역사였던 셈이다. 도를 더해가는 트럼프 반이민 정책이 멕시코나 중남미 이민자, 또는 불법체류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