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짙어지는 ‘승자독식’의 그늘

2019-04-10 (수) 조윤성 논설위원
작게 크게
매년 한국일보 거북이 마라톤에서 어김없이 마주치는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을 올해도 코스 반환점에서 만나 메이저리그 계약을 화제로 잠시 대화를 나눴다. 팀들이 지갑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아 꽁꽁 얼어붙은 듯 보였던 메이저리그 프리에이전트 시장이 막판에 확 풀리면서 매니 마차도의 3억 달러를 필두로 브라이스 하퍼 3억3,000만 달러, 마이크 트라웃 4억3,000만 달러 등 초대형 계약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문 위원은 메이저리그의 승자독식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의 이런 진단은 수치로 뒷받침된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을 포함해 올해 9자리 숫자의 계약을 맺은 선수는 총 10명. 이들이 확보한 보장액수만 무려 21억2,000만 달러에 달한다. 1979년 놀란 라이언이 4년 450만 달러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연봉 10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는 뉴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로 들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초대형 계약들에도 불구하고 전체 선수들의 평균연봉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약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수퍼스타들 계약 이면에는 평균연봉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뛰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존재한다. 제한된 돈을 소수에 몰아주다 보면 나머지 선수들에게 갈 몫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얼마 전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회장으로 선출된 롯데의 이대호는 자신의 임기 중 최저 연봉 3,500만원을 꼭 실현하겠다고 취임포부를 밝혔다.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스타들 뒤에 이처럼 월 300만원도 못 받으며 뛰는 선수들의 눈물이 있는 게 프로세계의 현실이다.

실력과 성적으로 말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다. 그러니 잘하는 선수들이 더 많이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그 비율이다. 한 선수의 기량이 다른 선수보다 조금 더 뛰어날 경우 보상에서는 몇 배 심지어 몇 십 배를 더 챙긴다.

프로 스포츠는 승자독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기업에서도 차등 보상과 불평등의 문제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미국이 가장 평등했던 시기에 수십 배 정도에 머물렀던 기업 CEO와 종업원들 간의 보수 차이가 지금은 수백 배로까지 벌어졌다. 그 어떤 CEO도 종업원들보다 능력이 수백 배나 뛰어날 수는 없다. 분명 기형적인 현상이다.

승자독식은 분배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 동기부여 수준을 높여 더욱 노력하게 만드는 순기능도 있지만, 탈선과 편법의 유혹 또한 강하게 받게 된다. 프로 선수들이 스테로이드의 유혹 앞에 무너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CEO들 역시 수치상 경영실적 개선을 통해 거액 연봉을 정당화시키려 감원과 구조조정 등 일차원적 수단들을 가차 없이 휘두른다. 주주들의 이익에 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는 것이다. 문제는 성공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에도 천문학적 보상을 챙길 수 있도록 계약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는 사실이다.

초대박 계약을 터뜨린 후 돈값을 못하며 ‘먹튀’로 전락한 프로 선수들이 그렇고 경영 실패로 쫓겨나듯 나가면서도 거액을 챙기는 CEO들도 마찬가지다. 변덕스런 성격으로 유명했던 홈 디포의 CEO 밥 나델리는 2007년 회사에서 해고되면서 위로금 명목으로 무려 2억1,000만 달러를 받아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가장 살벌한 승자독식의 세계는 바로 정치다. 특히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선거는 지면 모든 게 끝나는 싸움이다.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는 승자독식 체제를 구조화해 왔다. 이런 살풍경을 끝내고 민의를 좀 더 비례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실력과 결과에 따른 차등보상은 자본주의의 기본가치다. 하지만 그 보상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비상식적 방법과 기형적인 비율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공정성에 배치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신과 증오를 조성하게 된다. 이런 구조 하에서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칫 사회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승자는 사라지고 모두가 패자로 남게 될 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