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처럼 강렬하게 여우처럼 우아하게… 친근하면서 고급스런 동물 이미지
▶ 럭셔리 브랜드 상징으로 자리매김, 최적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도 각광
불가리 세르펜티 브레이슬릿, 구찌 고양이 스웻셔츠, 불가리 세르펜티 목걸이, 구찌 피글렛 콜렉션, 메종키츠네 여우
호랑이, 여우, 새, 곰, 호박벌, 산호뱀, 말, 강아지, 고양이, 고슴도치, 레오파드, 박쥐, 사슴벌레…. 럭셔리 브랜드에 등장하는 엠블럼 같은 동물과 곤충 등이다.
패션 브랜드가 자연을 모티브로 한 패턴을 많이 사용하는 가운데 유독 럭셔리 및 하이엔드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전통적으로 동물과 조류 등을 앞다퉈 내세우며 고급스럽고 강렬한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뱀은 지혜·생명력·치명적인 유혹, 강아지와 고양이는 친근하고 귀여움, 말은 건강과 섹시미, 곰은 착한 성품을 가진 상류층, 강렬한 패턴의 레오파드는 글램룩을 상징하는 식이다.
동물들이 럭셔리 브랜드에 많이 등장하는 데는 동물이 각각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친근함과 럭셔리한 이미지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럭셔리 브랜드는 동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그려내면서 자연스럽게 럭셔리를 표현한다. 동물 자체로 옷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데다 동물을 통해 친근하고 경쾌한 느낌을 선사하는가 하면 동물의 강렬한 컬러는 화려한 카리스마를, 세상에 없는 동물은 환타지와 상상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이 매번 특별한 패턴을 창조해내기는 어렵다. 동물은 컬러풀한 색감 때문에 어떤 로고와도 잘 어울리며 브랜드의 고유 패턴은 물론 자연스러운 메시지까지 전달할 수 있어 동물이야말로 가장 최적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셈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명품브랜드가 동물을 활용한 디자인에 적극 나선 건 젊은 세대 중심의 비건 소비 트렌드 확대와도 연관이 있다. 구찌는 2018년부터 동물 모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여우털을 많이 쓰던 버버리도 지난해 모피 사용을 중단했으며 샤넬도 이제는 뱀 등 희귀동물의 가죽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비건 브랜드’로 거듭나며 동물 소재 대신 동물 디자인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지혜, 생명력, 유혹을 상징하는 뱀은 불가리나 구찌에서 많이 등장한다. 수천 년 전부터 왕권 수호의 상징이었던 뱀. 선과 악, 독과 약, 죽음과 부활이라는 양극의 모순성으로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불멸의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했다. 불가리는 똬리를 틀고 꼬리를 무는 역동적인 형상의 뱀의 라인에서 생명력과 우아함을 보았고 뱀의 머리에서 강렬한 유혹과 매혹을 찾아냈다. 반지부터 팔찌, 시계와 가방, 심지어 선글라스에도 브랜드 시그니처 아이콘인 뱀 머리가 적용돼 이제 ‘뱀’하면 럭셔리 브랜드를 모르는 이들조차 불가리를 떠올리게 됐다.
뱀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로 구찌에 역대 최대 전성기를 가져온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빼놓을 수 없다. 미켈레가 선택한 뱀은 불가리의 궁극의 유혹인 뱀과는 사뭇 다르다. 미켈레는 레드, 화이트, 블랙의 스트라이프 컬러를 지닌 애완뱀 ‘푸에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구찌의 시그니처인 삼색라인과 오버랩시켰다. 40cm 길이의 귀여운 밀크 푸에블란은 청바지부터 가방, 클러치, 티셔츠, 스니커즈 등에서 구찌의 트렌디함을 극대화 시켰다.
전 세계가 ‘구찌 판’인 것을 두고 보지 못한 크리스찬 디올은 팝 아티스트 ‘카우스’와 손잡고 디올의 상징적인 코드인 ‘벌’을 대형화해 우아하기만 했던 디올의 의류와 슈즈에 젊음을 불어 넣었다. 한 명품회사의 대표는 “디올이 생전에 ‘여성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꽃’이라고 할 정도로 꽃을 사랑했는데 꽃과 꽃을 오가는 벌이 꽃과 뗄 수 없는 사이면서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시사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버버리는 리카드로 티시가 수석 디자이너로 부임 후 첫 작품인 2019년 봄·여름 콜렉션에서 소, 레오파드, 사슴 등의 동물 프린트 활용한 디자인을 내세웠다.
1837년 파리에 안장과 마구용품을 만들면서 첫 번째 고객을 말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가방, 의류, 스카프, 블랭킷, 핸드백 참 등에 브랜드의 기원인 말이 등장한다. 귀족들의 자가용이던 말이라는 동물에는 기본적인 럭셔리를 비롯해 역동성과 섹시함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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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