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금치’

2019-03-05 (화) 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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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최성호 ‘추억’

그때는 다 동학이었네라
누구라 할 것도 없네라
왕과 양반들 친일 모리배들 빼고는 죄다
남자고 여자고 애고 어른이고
조선 사람이믄 죄다 동학이었네라
저 무너미 고개 넘어 곰나루 돌아
우금치에서 다 죽었네라
몽둥이 들고 죽창 들고
왜놈들 신식총과 맞섰으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네라
우금치 마루는 시체로 하얗게 덮였고
시엿골 개천은 아흐레 동안 핏물이 콸콸 흘렀네라
준자 봉자 최준봉
녹두장군 모셨던 할배도 게서 죽었네라
니는 우금치가 낳은 씨알이네라
우금치를 잊으면 사람이 아니네라

-박제영 (시집‘조화벽과 유관순’)

어르신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우금치 전투의 이야기가 오늘 아침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다. 세상을 바뀌었는가? 자본과 테크놀로지, 그 정치 구조 아래서 허덕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진통제같이 주어진 셀폰 하나면 아이들도 조용해진다. 명분과 진실이 흐려진 시대, 격분하나 격분의 대상을 잃어버린 익명의 시대에, 문득 만나는 인내천의 뜨거운 언어가 가슴을 찌른다. 우금치를 잊으면 인내천을 잊은 것이고 녹두장군 모셨던 할배도 잊은 것이고 왕과 양반과 친일 모리배를 모시는 것이리라. 임혜신 <시인>

<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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