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럼에도 평화 위한 대화는 계속돼야

2019-03-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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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렬됐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주춧돌이 되기를 내심 기대했던 많은 재미한인들은 급작스런 회담 결렬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들이다. 회담의 성공을 바리며 밤늦게까지 TV와 인터넷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추이를 지켜보던 한인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반전에 당혹감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단독회담을 마치고 확대회담장으로 함께 걸어가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대단히 밝아 보였다. 현장 중계를 하던 언론들도 두 정상의 표정을 근거로 긍정적인 회담 결과를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확대회담 후 갖기로 예정됐던 오찬이 계속 미뤄지면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오찬과 합의문 서명식 없이 두 정상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돌발사태로 회담은 결렬됐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회담 이후 8개월 만에 마주 앉은 두 정상의 만남은 일단 가시적 소득 없이 끝났다.

큰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은 비핵화 조치의 범위와 제재완화를 놓고 양측이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제재완화를 요구한 북한과, 영변 플러스 알파의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미국 사이에 큰 폭의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70년의 적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은 지난한 길임을 이번 하노이 회담은 확인시켜줬다.


회담은 성과 없이 결렬됐지만 비관하기는 이르다. 비록 합의문을 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했으며 한미군사훈련과 추가적인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협상의 판 자체를 깨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두 정상이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악수하면서 헤어진 것도 나쁘지 않은 징후다.

일단 대화의 불씨는 살아 있다고 봐야 한다. 관건은 앞으로 이 불씨를 어떻게 잘 살려 궁극적으로 대타협에 이르는 동력을 만들어 내느냐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상대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자칫 회담 결렬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기며 손가락질 하다가는 수습이 힘든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살얼음 위를 걷는 조심스러움으로 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한다. 그 사이에서 한국이 떠안게 될 중재자로서의 역할 또한 한층 더 중요하게 됐다.

하노이 회담에 큰 기대가 쏠렸던 만큼 결렬로 인한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다. 언제 또 다시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게 될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정상화는 두 나라의 국내 상황, 그리고 두 지도자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뒤얽혀있는 난제이다. 단순하게 풀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번과 같은 진통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평화를 위한 노력에는 그 어떠한 멈춤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한인들의 정치적 지향점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염원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난관에 봉착한 북미대화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성원을 보내면서 차분히 지켜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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