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절’

2019-02-28 (목) Naomi 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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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유기자 ‘사각형’

친절이 무엇인지 진실로 알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무엇인가를 잃어봐야 해
한 순간 미래가 힘없이 끓는 수프 속의 소금처럼
녹아버리는 것을 느껴봐야 해
손에 든, 그토록 믿고 소중히 간직해 온 모든 것이
사라진 후, 친절과 친절 사이의 풍경들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알아야 해
승객들이 옥수수와 치킨을 먹으며 차창을 영원히 내다보는 버스
차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달리고 또 달리는

따스한 친절의 힘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인디안들이 하얀 판초를 입고 죽어서 누워있는 길을
여행해야 해, 그가 당신 일 수 있다는 것
그도 계획들이 있고 생명의 단순한 숨결을 가졌던
밤의 여행자였다는 것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친절이란 것을 알기 전에
슬픔이라는 또 다른 가장 깊은 곳을 알아야해
슬픔과 함께 깨어나 당신의 목소리가 슬픔의 모든 실을 찾아내고
슬픔의 헝겊의 크기를 알 때까지 슬픔과 이야기 해야 해

그러면 친절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친절만이 당신의 신발 끈을 매고
당신에게 편지를 부치거나 빵을 사러 나가게 한다는 것을

친절만이 세상 사람들 속에서 머리를 들어 이야기 하지
내가 바로 당신이 찾던 것이에요
그리고는 당신이 가는 곳 어디나 함께 가지
친구처럼 혹은 그림자처럼


Naomi Nye‘친절’ - 임혜신 옮김

친절이란 말 참 따스한 말이다. 살아가면서 나누는 작은 우연의 친절(A Random Act of Kindness)이 얼마나 세상을 밝게 해주는 지. 이 시가 말하는 친절은 가장 깊은 자비로서의 친절이다. 타인의 슬픔에서 깨달은 연꽃 같은 친절이다. 나 아닌 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사랑하는 일이며, 그들을 고통하게 한 부당한 폭력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이기도 하다. 시인이 친절을 생의 반려로 선택하라는 이유는, 그것만이 슬픔의 세상을 구원하는 본원적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 그것인 때문에 스스로 그것이 되려는 것이다. 미친 세상에 던지는 아름다운 전언이다. 임혜신 <시인>

<Naomi 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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