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보조식품’은 ‘약’이 아니다

2019-02-20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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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케이블 TV를 끊은 후 디지털로 보기 시작한 한국방송들은 켰다 하면 온통 건강관련 제품 광고들로 넘쳐난다. 특히 건강보조식품은 홍수라 할 만큼 무수한 제품들이 난립하고 있다. 디지털 TV의 등장으로 손쉽게 광고 스팟을 살 수 있게 된데다 초고령화 시대에 갈수록 높아지는 건강에 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건강보조식품 광고들이 TV 화면을 점령하고 있는 것 같다.

넘쳐나는 광고를 통한 체감뿐 아니라 실제 수치로도 건강보조식품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는 확인된다. 미국의 경우 연 시장규모는 400억 달러에 달하며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만도 5만~8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말 그대로 ‘황금 알을 낳는 시장’이라 할 만하다. 돈이 되다보니 일부 제약사들은 치료제 개발보다 건강보조식품을 만들어 파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다.

몸에 좋고 건강에 도움만 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건강시장의 과포화가 그리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적지 않은 제품들이 근거 없는 주장과 과장을 앞세워 물건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조식품들은 치료 목적으로 쓰이는 의약품이 아니다. ‘Dietary Supplement’라는 영어 표현이 말해주고 있듯이 말 그대로 부족한 영양분을 채워주는 보조적 기능을 하는 식품일 뿐이다. 그런데도 암과 치매 등 난치병들을 곧바로 낫게 해주는 의학적 효능이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제품들이 상당수이다. ‘완치’ ‘해방’ ‘탈출’ 같은 단어들이 난무한다.


지난 주 연방식품의약국(FDA)이 알츠하이머와 암 예방 및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등의 과장 광고를 앞세워 물건을 팔아온 건강보조식품 제조업체 수 곳에 경고 서한을 발송한 것은 당국의 단속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FDA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실상 건강보조식품 제조업계는 감독과 규제의 ‘무풍지대’였기 때문이다.

당국의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이 업종이 막 싹트기 시작하던 1994년으로 비타민, 미네랄, 허브 제품 제조업체들에 최소한의 신고와 레이블링을 요구한 것이 고작이었다. 업체들은 제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성분을 밝힐 필요가 없다. 판매를 규제하려면 FDA가 위험성을 증명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수만개의 제품들이 팔리는 시장에서 당국이 일일이 성분을 분석하고 안전성을 확인해 소비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몫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각자가 알아서 안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선택할 문제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의약품과 달리 건강보조식품은 효능 및 안전성과 관련한 정부의 검증과 승인 없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제품들을 먹고 건강이 좋아졌다고 소비자들이 느낄 수는 있다. 실제효과일 수도 있고 제품에 대한 믿음에서 생기는 ‘플라시보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맹신 때문에 적절한 의료적 치료를 등한시하는 어리석은 일만은 없어야 한다.

아주 오래 시판돼 온 제품이라면 안전성은 일단 확인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공짜가 아닌 이상 지나친 믿음과 기대로 건강보조식품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또 많이 섭취할수록 좋다는 잘못된 생각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한 주먹씩 입에 털어 넣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지혜는 건강보조식품 섭취에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조식품 제조업계 역시 소비자들의 건강불안을 자극해 성장해 왔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많은 건강보조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건강개선보다는 업체들의 재정상태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런 현실은 하루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FDA가 이번 단속을 계기로 단속관련 규정을 현실화 하겠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다. 몸에 좋고 건강개선 효과가 있는 일부 건강보조식품들이 있음에도 시장 전체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거품을 걷어내려면 당국의 강력한 규제와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같이 가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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