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운사이드’ 줄여나가기

2019-02-0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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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감독 첫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SK 트레이 힐만 감독이 병환중인 노부모 봉양을 이유로 연장계약을 고사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확률의 야구로 한국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SK에 새로 도입했던 시스템 가운데 하나가 수비 시프트였다. 상대타자가 잘 치는 방향으로 수비를 몰아 안타성 타구를 봉쇄하는 작전이다. 시프트 성공률은 대략 70% 정도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보편화된 수비방식이다.

그런데 부임 초기 수비 시프트는 투수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감독의 생각을 선뜻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힐만 감독은 우승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부임 초 투수들의 이런 반응을 “시프트로 타구를 막은 것보다, 정상수비였다면 잡을 수 있었을 타구를 놓친 걸 더 많이 기억하는 습성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래서 안타를 막아내는 경우가 반대 경우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은 수비 시프트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뇌리에는 긍정적 기억과 경험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이 더 뚜렷이 새겨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투자 등으로 손실을 입게 되면 이익을 얻은 경우보다 두배 이상 크게 인지한다고 행동경제학은 설명한다. 마치 시프트로 안타를 막아낸 경우보다 허용한 경우를 더 많이 기억하는 투수들처럼 말이다.

기억의 방식과 관련한 이런 경향을 삶에 적용해 본다면 “부정적 경험과 기억을 얼마나 잘 희석시키고 제거하느냐에 따라 정서적 웰빙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자신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시작한 건 아마도 행복보다는 불행의 이유와 실체가 훨씬 더 많고 구체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행복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가에 대해 많은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행복의 구체적 요소를 꼽아보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언급한다 해도 손에 확 잡히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행복연구가들조차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규명하려 수천 년 전부터 무수한 사람들이 애써왔지만 구체적인 행복의 요소에 관한 한 우리는 여전히 암중모색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행복을 저해하는 것이나 당신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들을 꼽으라면 상당히 구체적인 대답들이 잇달아 나온다. 지식경영인으로 주목받는 독일의 롤프 도벨리는 행복의 요소를 ‘업사이드’, 불행의 요소를 ‘다운사이드’로 지칭한다. 그러면서 인생의 다운사이드는 항상 업사이드보다 구체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예로 드는 다운사이드는 술, 마약, 만성 스트레스, 소음, 긴 통근시간, 하기 싫은 업무, 지나치게 높은 기대, 가난, 재정적 종속, 외로움, 외적 평가에 연연하기, 만성 수면부족, 짜증 등 끝도 없다. 이런 다운사이드 요소들은 늘 우리 삶에 끼어들어 긍정적 정서를 해친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좋은 삶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나쁜 기분과 부정적 기억을 안겨주는 다운사이드를 제거하는데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플러스 요소를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이너스 요소를 줄여가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복 추구하기’보다 ‘불행 피하기’가 보다 현실적인 처방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긍정적 감정을 저해하거나 삶을 위협하는 다운사이드는 개개인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현명한 투자가가 되려면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좋은 삶을 꾸려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과연 내 삶의 다운사이드는 무엇일까, 차분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리스트를 써내려 가는 것도 또 한 번 맞은 새해를 의미 있게 출발하는 방법이 될 듯싶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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