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 미안해

2019-02-05 (화) 12:00:00 고혜정 시인
크게 작게
엄마 미안해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자주 보여드리지 못해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 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늘 미안한 것 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고혜정(1968- )‘엄마 미안해’ 전문

고혜정 작가가 열거한 딸로서 하지 않아야 될 일들은 세상의 모든 보통 딸들이 엄마에게 날마다 해드리는 일들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전화는 먼저 끊고, 자주 찾아가지도 않으면서, 괜찮다는 말만은 철석같이 믿는다. 딸을 키우며 엄마가 끓이는 속 가슴앓이는 먼 후일 겪어보아야만 안다. 엄마의 심장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지 않고 자식들이 있는 곳에 있다고 한다. 영원한 보금자리이며 영원한 후원자이며 영원한 친구이며 영원한 빚인 엄마. 그 이름, 참 포근하고 튼튼하고 강하고 그래서 외로운 이름이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임혜신 시인

<고혜정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