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벽’ 으로 만든 ‘천국’이라면

2019-01-16 (수)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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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장기 셧다운 사태를 초래한 ‘국경장벽’ 갈등이 엉뚱하게 ‘천국’ 논쟁으로 비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한 기독교 복음주의 목사의 궤변이 천국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천국에는 장벽이 있을 것이어서 장벽을 건설하는 것이 ‘도덕적’이며 ‘성경적’이라는 강변이었다. 급기야 기원전 5세기 인물로 알려진 구약성서의 느헤미야가 성경 속에서 소환됐고,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까지 동원되었다.

‘성경’을 끌어들이면서까지 트럼프의 국경장벽 소망을 거들고 나선 이는 텍사스, 댈러스 제1침례교회의 로버트 제프리스 목사였다. 트럼프 면전에서 “장벽은 비도덕적”이라고 꼬집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발언을 반박하려는 것이었지만 ‘장벽이 있어야 천국’이라는 발언은 신자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괴이한 성경해석이다.

지난 6일 폭스 뉴스 방송의 ‘폭스 앤 프렌즈’에 등장한 제프리스 목사의 발언은 이랬다.
“천국은 그 자체로 이를 둘러싼 장벽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곳(장벽이 쳐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에게 허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만약 장벽이 ‘부도덕한’ 것이라면, 결국 신도 부도덕하다는 말이다.”


장벽을 건설하는 것은 천국을 만드는 것이며, 장벽을 비도덕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신을 비도덕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비약과 궤변이다. 요한계시록은 21장 1절부터 14절에 걸쳐 세상의 끝에 들어서는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3개씩 12개의 문을 가진, 이 대목의 ‘크고 높은 성곽’이 그에게는 천국을 만들어주는 ‘국경장벽’이 되는 셈이다.

이어 느헤미야도 소환된다. 제프리스 목사는 성경을 인용해 신이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을 둘러싸는 장벽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국경장벽을 소망하는’ 트럼프는 ‘신의 뜻’을 따르는 ‘21세기 미국의 느헤미야’가 된다. 그러나 제프리스 목사는 당시 느헤미야의 장벽이 사실 바빌론 박해를 피해 탈출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였다는 점을 간과한다.

장벽으로 만들 수 있는 천국은 없다. 안과 밖을 가르고 가로 막는 장벽이 천국일리도 없다. 타인의 지옥을 전제로 만든 ‘장벽 천국’이 천국일 수도 없다.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 안에 가둬버린 이스라엘의 서안과 가자지구의 전기울타리, 8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이 그렇고, 유태인을 게토로 몰아넣었던 유럽의 장벽들도 그렇다.

제프리스 목사의 생각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연합예수교 교단(UCC) 존 도어하우어 회장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수용할 것을 요구한 원칙의 근간(the foundation of a law)은 우리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장벽은 예수가 말한 그 이웃 사랑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장벽은 피난처가 필요한 이들에 대한 배척이자 거부다. 수천마일을 걸어서라도, 생명을 걸고서라도 삶의 터전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추방되거나 문전박대를 당하는 천국이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이들을 거부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김상목 정책사회팀장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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