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된 기부의 놀라운 ‘승수효과’

2019-01-1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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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를 통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요 축복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보람과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불미스런 일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국제적 구호기관의 성추문과 기부 받은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탕진하는 등의 일탈이 불거지면서 기부를 꺼리게 되는, 이른바 ‘기부 포비아’가 확산된 것이다.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내가 건네는 돈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미국은 선의가 넘쳐나는 나라이다. 기부를 하는 미국인 가구는 약 70% 정도로 어느 선진국들보다도 남을 돕는 게 생활화 돼 있다.

그런 만큼 이런 선의를 악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기부사기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곳 또한 미국이다. 2017년 여름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하고 미국인들의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때 뉴욕타임스는 “재난 발생 시 정부보다 민간이 먼저 나서는” 미국의 아름다운 전통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돈과 구호품들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우리는 남을 도우려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에 지나치게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이성의 잣대가 필요하다. 착한 일을 할 때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기부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훈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힘들게 벌어 건넨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쓰여 누군가의 삶에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때 비로소 기부의 의미는 완성된다.

어떤 돈을 투입했을 그것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경제학에서는 ‘승수효과’라고 한다. 승수효과가 클수록 그 투자는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기부도 대상과 명분에 따라 승수효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을 이끌며 기부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의 젊은 철학자 윌리엄 매카스킬은 기부대상을 잘 선정하면 엄청난 승수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부의 승수효과가 가장 큰 대상으로 그가 꼽는 건 빈곤한 후진국들이다. 그는 기부가 같은 공간 내에 있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위해 쓰이는 것도 좋지만, 이 돈이 바다와 국경을 건너 훨씬 빈곤한 지역에 건네지면 최소 ‘100배의 승수효과’를 안겨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건네는 도움을 받는 상대가 가난할수록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는 더 크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도우려 의사가 되고자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초 이 남성은 아프리카로 건너가 비영리단체 의사로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생각을 바꿨다. 영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그 가운데 일부를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게 그곳에서 수술 칼을 잡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란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가진 수퍼리치들이 속속 탄생하고 투기로 하루아침에 거액을 벌었다는 등의 비현실적 스토리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수십 달러의 가치는 정말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장면 한 그릇과 스타벅스 커피 몇 잔 값의 돈이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때 그것이 희망이 되고 심지어 생명이 된다는 건 여전히 놀라운 사실이다. 이것이 효과적 기부의 힘이요 기적이다.

시간 좀 들여 인터넷에서 손품을 팔고 주변의 조언을 구하면 구호기관의 옥석을 가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돕기에 팔 걷고 나서는 것도 좋지만 소액 정기기부의 생활화를 통해 가난과 질병 같은 ‘만성적 긴급 상황’을 개선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승수효과 때문에라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1월은 그런 좋은 습관을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기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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