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조태환
▶ 미처 몰랐던 토막얘기들 (241)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인 부조리나 잘못된 관행, 불공평한 전통등이 있을때에 그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서 개혁하고 근절시키기 보다는 그런 불공평한 일들에 항의하는 “불평분자”들을 제거해 버리면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보는것 같다.
모든 문제를 “Law and Order” 라는 prism 을 통해서만 보는 까닭에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은 가장 강력한 공권력 (법원, 검찰, 경찰, 도청, 비밀수사, 기타의 폭력등) 동원에 있다고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연천만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서 항의시위를 해도 불과 얼마전까지 한국의 부패독재 세력들은 일마야! 언놈이 “천만명이 틀릴 수는 절대로 없따고 카드노! 문제는 벌써 오래전에 제트기, 탱크, 포병대까지 포함한 강력한 병력동원을 위한 비상계엄령이라 타든가 위수령이라 카는 작전계획을 않 맨들어 놓은것이 문제가 아이가!” 라고 통탄 하였을 것이다.
중립적인 관측자 입장에서 보면 진보나 보수가 모두 “일리”도 있고 문제점들도 많이 있다. 또 미국의 역사 전개과정에서 시대적으로 진보가 더 공헌을 했을때도 있고 보수가 안정을 유지시켜 주었을 때도 있어서 무조건 어느쪽이 좋고 나쁘다고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때 미국의 대법원은 보수쪽으로 기울어졌을 때보다는 진보쪽 으로 기울어 졌을때에 보수쪽의 강력한 반발을 더 많이 받았었다고 생각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미국생활 전반에, 특히 정치에 아주 중대한 영향을 준다. 똑같은 사회현상을 보고도 양측은 그 원인을 정반대쪽에서 찾아내고 해석도 다르게 하고 해결책도 서로 상반되는 것을 내어 놓는다.
예를 들어서 난폭한 흑인들의 폭력시위가 일어났을때에 “진보”측에서는 “쌓이고 쌓였던 울분이 터져나온것” 이라고 동정적으로 보고 흑인들의 울분을 삭여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 하였는가 하면 “보수”측 에서는 “이것들이 풀어 놓아주기 시작하니까 방자하기가 끝이없네!” 라고 말하면서 “모든 흑인폭동은 Law and Order 의 문제이므로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해서 무자비하게 진압 해야만 한다” 라고 대응하기가 일수이라는 것이다. 보수쪽은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라는 이유를 들어서 “합법적”인 임신중절도 반대하며 고용주는 자기의 건강보혐 에서 종업원에게 피임약을 주는것이나 가족계획교육을 하는것까지 거부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 이상자이거나 사회불만자들의 총기난사로 “무고한 생명들”이 연일 개죽음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국민의 총기휴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개정 제2항은 폐지 되어서는 않된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대법원의 역할을 몇가지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1960년대에 미국전체의 인구는 13% 정도 증가 하였으나 범죄률은 148%나 증가 하였는데 범죄는 대부분 흑인빈민 지역에서 일어 났었다고 한다. 특히 흑인지역에 범죄가 급증하였다면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제도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해보는것이 아마 정상적인 절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미국사람들은,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대법원에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범죄자들이 늘어나게된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거나 수정해야되는 것이 아니고 범죄는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만 “근절”이 되는것인데 대법원이 범죄자들에게 너무 관대했던 탓임으로 대법원에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는 어거지 주장이었었다.
Earl Warren 대법원장의 대법원은 과거의 선고기준을 뒤엎는 새판례들을 대량으로 내기 시작하였고 국정 전반에 간섭하는듯한 인상 조차 주는 판결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대법원은 연방대법원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주 (state) 내의 문제들까지 “간섭”을 한다고 보였었다고 한다. “인종차별금지 학교통합” 명령인 Brown vs. Board of Education 판례는 일반적으로 주정부의 전권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고등학교 문제에 관한 것이었으며 역시 주정부 문제라고 간주되어오던 투표문제에 대해서 새 투표 규정을 명령하였었다. 1962년에 대법원은 각주는 인구비례에 균등하도록 의원들의 선거구역을 조정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었다. 많은 주들에서 농촌인구들이 도시들로 이동해 갔으나 선거구 재 조정이 되지 않아서 농촌보다 도시의 인구비례 의원수가 적음을 알고 1964년에 모든 주는 균등한 1인1표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선거구를 재조정 할것을 명령하였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인구가 100만명으로 연방하원의원 4명을 뽑을수 있는 도시가 있는데 흑백의 인구비율이 50 대 50 인 경우에는 흑백의원 2명씩이 뽑히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투표구역 경계선을 “기술적”으로 잘 그어 놓으면 백인 3명, 흑인 1명만 뽑히게 될수가 있다. 남부의 여러주들 뿐만 아니라 New York 시 에서 조차도 불과 몇십년 전까지 있었던 일이다. 이처럼 정치, 인종, 사회적인 이유로 투표구역을 인위적으로 작성하는것을 “Gerrymandering” 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각주의 하원이 투표구 경계선을 긋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 왔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각주에게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인위적인 Gerrymandering 을 금지하도록 명령하였었다. “기득권세력”들은 강력하게 반발 하였었다.
미국에서 종교에 관한 법의 제정이나 재판은 극히 예민한 문제라고 간주되어 왔었다. 미국 헌법개정 제1항은 국가가 종교를 설립 (가령 국교로) 하는것을 금지하고 종교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1962년에 대법원은 New York 주에서 교욱위원회가 작성한 기도문을 공립학교 교실에서 쓰는것을 위헌이라고 금지 시켰으며 1963년에는 공립학교 교실에서 성경낭독을 하는것도 위헌이라고 금지시켰다. 이 판결들로 생겨났을 찬반여론이 매우 심각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될수 있는 일이다.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문 낭송과 성경 낭독 금지가 기독교계 보수주의자들 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기타의 보수주의자들을 우려하게 만들었던 대법원 판결들은 범죄자들의 인권을 대법원이 너무 관대하게 존중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거론되는 몇가지의 대법원 판례들을 분석해 보시고 독자들께서는 자신이 이념적으로 어느쪽에 더 동조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Gideon vs. Wainwright (1963) 의 판례에서 대법원은 사소한 범죄일지라도 피의자가 빈곤한 사람일 경우에 정부는 관선변호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Escobedo vs. Illinois (1964) 와 Miranda vs. Arizona (1966) 의 판례들에서
만일 경찰이 취조과정에서 피의자에게 “묵비권”이 있다는 사실과 취조중에 피의자의 변호사가 참석할수 있다는 권리를 알려주지 않거나 또 피의자가 발언하는 모든것은 법정에서 재판자료로 쓰여질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피의자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드라도 유죄판결을 받을수가 없을것 이라고 하였다.
대법원은 1968년에 사형언도가 가능한 범죄의 재판에서 어느 배심원 후보가 자기는 사형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사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그 후보자가 배심원이 될수 없도록하는 관행은 위법이다 라고 판결하였다. 이 판례가 나옴으로써 당시 이미 사형언도를 받고 대기중이던 사형수 435명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재심을 청구할수 있게 되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