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 지구, 그리고 나

2019-01-02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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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의 이름이다. 이 사진은 1990년 2월14일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이며 NASA 자문위원인 칼 세이건의 주도로 촬영된 것이다.

당시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떠나 지구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칼 세이건은 딱 한번만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돌려 지구 쪽을 찍게 하자고 제안했다. 많은 학자들이 반대했으나 이를 무릅쓰고 돌린 카메라가 찍은 6개 행성을 ‘가족사진’이라고 부른다.

이 사진에서 지구는 바늘구멍 정도 크기의 극히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들이 점선으로 표시해놓지 않았다면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작은 점이다. 세이건은 후에 쓴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다음과 같이 그 소회를 기록했다.


“이 먼지 같은 티끌이 우리의 보금자리고, 고향이고, 바로 우리다. 우리가 알고 들었던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여기서 살았다. 모든 즐거움과 고통, 모든 종교와 이념, 경제체제,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교사들, 부패한 정치가, 인기스타, 위대한 지도자들, 역사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이 우주에 뜬 먼지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광활한 우주 속의 너무나 작은 지구에서,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수많은 정복자들이 저지른 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 서로 얼마나 자주 오해했고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해보라면서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라고 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따르면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개 있고, 각 은하에는 평균 1,000억개의 별이 있으며, 각 은하마다 별의 수보다 많은 행성이 있다. 우리 은하에만도 다양한 성격의 별들이 4,000억개나 있다는데 이 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가 가까이 알고 있는 별은 아직까지는 태양 하나뿐이다.

‘빅뱅’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는 137억년, 어둠뿐이던 우주에 빛이 처음 탄생한 것은 빅뱅 후 38만년이 지나서였다.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고 인류의 역사는 170만년으로 추산되는데 그동안 이 작은 지구의 바깥으로 나가본 사람은 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이 가운데 100명 남짓한 우주비행사를 만나 그들이 경험한 정신적인 변화를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우주비행사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처음 우주로 나갔을 때 가졌던 충격적인 체험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구와 우주를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서 우주 전체의 공간을 즉물적으로 감각하고 바라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광경에 압도된다는 것이다. 마치 신의 눈으로 지구와 우주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러셀 슈와이카트(아폴로 9호)는 “우주에서 지구를 보았을 때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마치 인간의 체내에 있던 박테리아가 체외로 나가 처음으로 인간의 전체 모습을 보고,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과 똑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우주에서 지구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또 지구에서 인간의 존재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한편 우주비행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은 “지구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태양이 빛나고, 그 빛을 받아 청색과 백색으로 빛나는 지구의 아름다움은 많은 우주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첫 소감이다.

지구의 아름다움은 그곳에만 생명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천혜의 공간인 지구에서 인간은 서로서로 생명이라는 유대, 위태롭고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져있다. 우주 속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고, 지구 속에서 인간은 미생물보다 작은 존재지만 이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곳, 아무도 뛰쳐나갈 수 없고 서로 협력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새해에는 ‘우주적 감각’을 키워봄직 하다. 너무 가까울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볼 때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이 뒤바뀔 수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유기체 속에서 찰나 같은 삶이지만, 찰나를 영겁으로 만드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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