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해(己亥)년, 새해는 밝아 오는데…

2018-12-3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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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안 한국정부 당국자는 침묵에 빠졌다. 2018년 12월 하순의 시점,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그 상황에서 그 한국관리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r)’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고위보좌관인 그는 한숨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문재인 정부)와 미국 간에, 또 미국과 북한 간에도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우리 정부 안에서조차 컨센서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뉴스위크지의 보도다.

긴 미몽이었나. 그보다는 동상이몽으로 보아야겠다. 아니 처음부터 사기극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 비핵화라는 것은. 미국과 북한 협상이 결국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한 비핵화의 진실이 드러났다. 그 진실의 순간의 스냅사진이 뉴스위크지 보도가 아닐까.

무엇이 교착상태를 불러왔나.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대북제재 해제 등 싱가포르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미국의 실제정책이기보다는 트럼프의 홍보에 가깝다는 사실을 북한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략문제 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트럼프 뒤에 버티고 있는 미국의 외교안보 엘리트층이랄까, 기득권층이랄까. 그 파워 집단의 두터운 벽을 절감했다. 그 결과로 보여 진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팀 쇼로크지의 분석이다.

의회가 그 한 축이다. 미국의 군(軍)-산(産) 복합체와 연계된 싱크탱크, 주류언론 등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그 외교안보 엘리트층이 북한 비핵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북한 비핵화는 군사, 경제, 외교를 망라한 전 방위적인 ‘최대압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중간선거 결과 의회권력이 민주당으로 일부 넘어가면서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공세는 거세졌다. 그 과정에서 협상하는 체하면서 뒤로는 여전히 핵전력 증강에 혈안이 돼있는 북한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면서 ‘김정은은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미국의 대중에게 확산됐다.

초당적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일사불란하다고 할까. 그 외교안보 기득권층의 막강한 파워에 평양측은 새삼 눈을 뜨면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의 힘의 한계를 절감한 것. 거기다가 트럼프를 보좌하고 있는 인물들도 그렇다. 하나 같이 반(反)북 보수 강경파들이다. 그러니.김정은 체제는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애써 취해오던 모호성이란 가면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 측 버전을 분명히 밝히고 나선 것이다.

먼저 조선반도의 남부, 다시 말해 대한민국도 조선 인민공화국의 영토임을 천명하면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 그 뿐이 아니다. 전체 동아시아지역을 커버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전면 제거하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논리를 펴고 나온 것이다.

못 먹는 감 찌른다고 할까. 또 다른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할까. 경제제재를 풀 가능성은 안 보인다. 오히려 제재만 강화됐다. 그러자 판 깨기에 나서 ‘한반도 비핵화= 북한 완전비핵화’란 국제사회의 인식을 뒤엎는 억지 논리를 편 것이다.


관련해 새삼 국제적 시선을 끌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다.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비핵화의 공식으로 굳어져 있다. 그 CVID에 물 타기를 시도했다. 그러면서 북한제재를 완화해줄 것을 미국으로, 유럽으로 다니며 요청했다. 틈만 나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고 믿을 수 있는 지도자라고 역설했다. 그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뭐라고 해명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허상에 홀려 쫓아다닌 것인가. 아니면 좌파 정권 특유의 오직 김정은을 향한 소망적 집단사고(wishful group thinking)의 결과인가. 동시에 증폭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아시아타임스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라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평양 측과의 모종의 공모극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시선을 던지면서 ‘비핵화 중재자로서 신용에 금이 간 문재인 정부는 맹방인 미국이냐,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비판은 더 직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측이 주장해온 이른바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최근 들어 김정은이 ‘최후 승리’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평양의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2019년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향한 ‘마이 웨이’를 강행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 결과 한미관계는 더 심각한 긴장국면을 맞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2019년의 진짜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준수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체제가 얼마만큼 속도를 내 이른바 평화프로세스란 것을 추진하는지에 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무슨 말인가. 북한에 올인 했다. 그 결과 한국은 외교적 고립상황을 맞게 되면서 최악의 안보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다. 곧 밝아오는 기해(己亥)년. 그 새해가 어쩐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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