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2018-12-31 (월) 손화영 /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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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절 기간에 성당의 신부님께서 미사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타클로스를 더 찾게 되었다고.

산타클로스는 3~4세기경 성 니콜라우스와 관련된 설화가 네덜란드인에 의해 17세기경 미국으로 전해진 후 그것을 한 음료 회사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현재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한국 전통음악과 악기도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설화가 있다. 고구려의 왕산악이 거문고를 타자 하늘에서 검은 학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해서 현학금으로 불리던 전설이나 호동설화에 나오는 자명고, 우륵이 12 부족을 통합하기 위해 지은 12개의 향가에 대한 설화, 꾀꼬리 소리를 본떠 만들었다는 고구려 설화에 나오는 꽹과리 등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설화의 하나가 바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신라의 31대 신문왕이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에게 받은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불렀는데 이후 32대 효소왕대에 이르러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나무로 된 이 만파식적을 불면 적들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장마에는 개며 물결도 잦아들고 평온해지는 등 나라의 근심이 모두 해결이 되었다는 전설을 지닌 이 피리는 ‘거센 물결을 자게 하는 대’의 의미로 ‘만파식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만파식적의 전설은 다른 악기에 담긴 전설과 마찬가지로 단순 전설에 그치지 않고 신라의 국보로서 당시 신라의 왕의 정통성 확립과 호국불교 신앙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예악을 강조하며, 음악적으로는 신라음악의 창조적 단계를 보여준다.

만파식적은 어느 날 신라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삼국사기의 악지에서는 이것이 대금의 원류로 소개된다. 대금은 옛 동양인의 관점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우주를 구성하는 여덟 가지 물질 즉 쇠, 돌, 명주실, 대나무, 바가지, 도자기, 가죽, 나무 중 한 가지인 대나무로 만든다.

이 대나무에서 울려 나와 허공 속을 청아하게 가르는 음색으로 청성자진한잎이라는 정갈하면서도 깊은 여백의 미를 가진 곡을 연주할 때면 이 소리가 바로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시공을 초월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손화영 /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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