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하와이 주의원 시작, 60년대 가주의회 첫 입성…2015년엔 LA 시의원 탄생
김창준 1992년 김창준 후보가 당시 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 41지구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당선돼 미주 한인 이민 사상 최초의 연방하원의원으로 탄생했다.
미주 한인 이민사회의 정치력 신장 노력과 정계 진출 과정은 그 자체로 시련과 도전의 역사다. 1903년 이민 선조들이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한인 이민사회는 첫 정착지이던 하와이에서부터 정치력의 발판을 이룩한 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한인 여성들과 1.5세, 2세 한인들의 담대한 도전으로 주류 정치무대를 향한 정치력 신장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냈으며 또다시 20년만에 30대 한인 연방하원의원을 탄생시켰다. 115년의 한인 미주 이민사의 험난한 정치 도전을 되짚어봤다.
이민사 55년만에 첫 정계 진출
미주 한인사회의 정계 입문은 1958년 한인 장원배씨와 필립 민씨가 하와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이 첫 주류 정계 진출로 기록된다. 115년의 한인 이민사에 반세기 만의 정치입문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모든 커뮤니티의 역량을 항일 독립운동에 쏟아 부어야 했던 한인 선조들에게 주류 정치도전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인 최초의 주 하원의원으로 기록된 장원배씨는 주 하원의원을 역임한 이후에도 하와이주 판사를 거쳐 한인 첫 연방 판사에 임명돼 큰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한인 정치도전 역사가 가장 활발한 하와이에서는 다수의 주 의원들을 배출했고, 지난 2000년에는 하와이주 빅아일랜드시에서 해리 김씨가 첫 선출직 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알프레드 송 의원
하와이에 이어 주류 정치권에 입문한 한인 정치인은 바로 한인 정치도전사에 한 획을 그은 알프레드 송(한국명 송호연) 변호사다.
캘리포니아주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한인이자 아시아계 이민자인 알프레드 송 변호사는 의정활동과 법조계 활동에서 뚜렷한 업적과 자취를 남긴 선구적인 인물이다. 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의 선구자로 기록된 알프레드 송 전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LA 한인타운 윌셔-웨스턴 역에 이름이 부쳐져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1960년 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몬트레이팍에서 시의원에 당선됐고 이듬해 실시된 45지구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캘리포니아주는 물론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본토에서 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 주의원이 됐다.
이후 2년 뒤에는 28지구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1977년까지 16년간 주 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쳤으며 지난 2004년 작고했다.
강석희 전 시장
최석호 의원
데이빗 류 시의원
미셸 박 스틸 수퍼바이저
한인 첫 연방의원 탄생
미주 한인 정치사에서 1980년대는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알프레드 송 전 의원이 눈부신 의정활동의 성과를 냈지만 1980년대에는 기나긴 정치적 단절기를 맞게 된다.
10여년 간의 긴 휴지기를 거친 한인 커뮤니티는 1990년대에 이르러 정치적 도전 움직임이 거세게 일면서 한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정치력 신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게 되고, 4.29 LA 폭동을 통해 본격적인 정치도전의 새 전기를 맞게 된다.
폭동을 통해 정치력 신장의 큰 교훈을 얻은 미주 한인사회는 1992년 마침내 한인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 탄생이라는 큰 이정표를 남긴다. 1990년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에 당선되며 정계 진출에 성공한 김창준씨가 1992년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의 밥 베이커 후보를 누르고 마침내 연방의회 입성에 성공하며, 최초의 한인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한 것이다.
연방 하원에 입성한 김창준 의원은 1994년 에드 테이지 후보, 1996년 리처드 월드론 후보를 연달아 꺾으면서 연방 하원의원 3선에 성공하는 등 한인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갔지만 선거 과정에서 모금한 정치자금 이 문제가 돼 결국 정계를 떠나야했다.
1990년대는 김창준 연방 하원의원 배출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 말고도 오리건과 워싱턴주에서도 새로운 성공기를 이어갔다. 오리건주에서 한인 임용근씨가 주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워싱턴주에서는 신호범씨가 주 하원에 입성했다. 또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시에서는 한인 정호영씨가 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92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임용근씨는 이후 주 상원과 하원을 오가며 내리 5선을 기록했고, 같은 해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내리 4선을 기록한 신호범 전 의원은 임용근 전 의원과 함께 한인 정치계의 대부로 불리며 한인 정치 지망생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자임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기여해왔다.
어바인 시장 등 선출직 잇단 진출
고 알프레드 송 전 캘리포니아주 의원 이후 그동안 한인사회는 남가주에서 상당한 선출직 정치인 배출의 성과를 이뤄냈다. 보수적 정서가 지배적인 공화당의 아성인 어바인에서 지난 2008년 이민 1세로 첫 한인 시장으로 강석희 시장이 당선됐다.
한미 민주당협회장과 OC 한미연합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계인맥을 넓혀가던 강석희씨는 후원자를 자임한 베스 크롬 어바인 전 시장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2004년 27년 간 거주하던 어바인에서 시의원에 도전해 당선됐으며 ‘강석희는 약속을 지킨다’는 주민들의 믿음은 2006년 재선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2008년 11월4일 한인 이민 1세 최초의 직선 시장이자 어바인시 사상 최초의 소수계 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4년 캘리포니아주 하원 65지구에 출마한 한인 영 김 당시 후보가 민주당 소속 현역의원을 누르고 당선돼 2016년까지 주 하원으로 공립학교 학비 동결과 세금 인상 억제를 위해 노력했다.
또 어바인시에서 시의원 및 교육의원으로 활동해온 최석호(미국명 스티븐 최) 의원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지난 2012년 어바인 시장에 당선되면서 2008년 이 후 어바인 시장을 계속해서 한인이 맡기도 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 68지구 주 하원의원직에 도전한 최석호 시장은 2016년 당선됐고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LA 최초 한인 시의원 탄생
지난 2015년에는 LA에서 미주 한인 이민사 최초의 한인 시의원 탄생이라는 역사적 도전에 나선 데이빗 류 당시 후보가 LA시 기성 정치권을 등에 업은 현직 시의원의 수석보좌관 출신 캐롤린 램지 후보를 누르고 미주 한인 이민사 최초의 LA 시의회 입성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해외 한인사회 최대 한인 밀집지이자 미국 제2도시인 LA에서 막강한 정치력 영향력을 가진 시의회에 만 39세의 젊은 한인 정치인인 데이빗 류 후보가 당당히 입성한 것은 미주 한인 이민 역사 112년만에 이뤄낸 미국 내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사의 획기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20여년 만의 연방의회 재입성
미국 연방 하원의원 435명 중에 일본·중국·베트남계 의원은 있지만 1998년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이 낙선한 이후 20년 가까이 단 한 명의 한인의원도 배출하지 못한 한인사회에 마침내 2018년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11월6월 실시된 선거에서 뉴저지주 3선거구에 출마한 한인2세 앤디 김 후보가 현역인 톰 맥아더 의원을 상대로 1.1%포이트 차 앞서 연방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친한파 에드 로이스 의원의 추천을 받아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연방 하원 39지구에 출마해 한국계 여성 최초로 미국 연방하원 진출이 유력시됐던 영 김 후보는 11월6일 선거 직후 앞서나가다가 막판 역전을 허용해 아쉽게 연방의회 입성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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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박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