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욱일기’ 벽화, 현명하게 대처해야

2018-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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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 내 공립학교에 그려진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벽화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RFK 커뮤니티 스쿨의 체육관 외벽에 그려진 문제의 그림은 벽화작가 보 스탠튼이 2016년 완성한 작품으로, 학교 부지의 ‘유명한 역사’에 오마주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학교가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당한 앰배서더 호텔 자리에 세워졌고, 이곳에 할리웃 스타들이 자주 드나들던 유서깊은 나이트클럽 ‘코코넛 그로브’가 있었기 때문에 여배우 에바 가드너의 얼굴과 팜트리 주변으로 햇살이 퍼져나가는 배경의 벽화를 그린 것이다.

이달초 한인커뮤니티 단체들이 방사형의 햇살 문양은 일본제국주의와 전쟁범죄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제거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 벽화작가와 LA통합교육구(LAUSB) 관계자들은 한인들에게 상처준 것을 사과하면서 벽화 제거에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사이 이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주류 각계에서 터져 나오면서 LAUSB는 17일 벽화 제거 입장을 철회했다. 이 학교에 로버트 케네디의 얼굴을 그린 유명 벽화작가 셰퍼드 페어리가 스탠튼의 벽화를 지우면 자신의 벽화도 지우겠다고 나섰고, 케네디의 두 아들은 학교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정치적 의도로 예술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격한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이외에도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고 LA 타임스 등 주류언론들도 한인 커뮤니티의 요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벽화 제거에 반대하는 측은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과 방사형 햇살 문양은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의 후광 등에 사용되어온 좋은 이미지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예상외로 커진 이번 문제에 한인사회는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자칫 코리안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민족 정서만을 내세우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민족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벽화를 지우고 안 지우고를 떠나서,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자행한 잔혹한 학살과 수탈의 역사, 햇살 문양의 욱일기 아래 짓밟힌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민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주류사회에 분명하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유대인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 나치의 스바스티카 문양을 예술작품에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과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대해서도 분명한 논의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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