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대인의 교육법

2018-12-1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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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전체로 따져 세계 인구의 0.2% 미만이고 미국 내 유대인 수는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연방 상원의원의 11%와 연방 대법관의 1/3이 유대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스티브 발머, 인텔의 앤디 그로브,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오러클의 래리 엘리슨이 모두 유대인이고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베어 스턴스 등 월가를 주름잡는 금융기관들 모두 유대인이 만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23%, 아이비리그 학생의 21%,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의 50%, 교향악단 지휘자의 33%,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의 37%, 포브스 400대 부자의 31%가 유대인이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기록이다. 유대인들이 이런 업적을 이룬 배경에는 강한 교육열이 있음은 물론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예외가 없을 정도로 자녀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 점은 한인부모들과 닮았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자선에 대한 태도다. 많은 유대인 가정에는 푸시케라는 돈 상자가 있다. 매일 자녀들에게 남은 동전을 이 상자에 넣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모아진 돈은 자기보다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된다.

유대인들은 또 회당이나 집에서 기도를 한 후 ‘티쿤 올람’을 되뇌인다. 히브리어로 ‘세상을 고치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성된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이며 이를 고쳐 나가는 일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의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수단이 ‘체다카’의 실천이다. ‘체다카’는 ‘자비’ ‘자선’으로 번역되지만 이보다 강한 뜻을 품고 있다. ‘체다카’의 어원인 ‘체댁’은 ‘정의’라는 뜻이다. 자선과 자비를 실천하는 일과 세상을 좀 더 의롭게 만드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체다카의 실천은 유대인 계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결과 유대인은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민족이다. 비즈니스 위크가 뽑은 미 50대 기부자의 38%가 유대인이다.

가장 위대한 중세 유대인 철학자로 ‘위대한 독수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을 8단계로 구분하고 그 가장 높은 단계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어 그 사람이 자기 발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학교를 먼저 나온 선배가 형편이 어려운 후배를 도와 그가 학업을 마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보다 큰 자선은 없다. 이는 또 가난한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로 자녀가 고통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최근 야채 행상으로 큰돈을 번 노부부가 전 재산 400억 원을 고대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유대인으로 뉴욕 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가 대학 기부금으로는 사상 가장 큰 액수인 18억 달러를 모교인 존스 합킨스 대에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5달러를 모교에 기부한 블룸버그는 재능 있는 학생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500억 달러의 재산가인 그가 지금 준 18억 달러보다 무일푼이던 시절 5달러를 모교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인들은 자녀 교육에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지만 자선에 관한한 아직 많이 뒤진다. 영국 자선지원단체(CAF)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부 참여 지수는 34%로 139개 조사 대상국 중 62위에 그쳤다. 전쟁으로 참화가 된 이라크나 1인당 GDP가 한국의 1/20에도 못 미치는 미얀마보다 낮다. 참고로 미얀마의 기부 참여 지수는 세계 1위다. 한국인은 기부액수가 작을 뿐더러 그나마 종교단체에 편중돼 있고 교육기관에 대한 기부는 극히 작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대조적이다.

따지고 보면 유대인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돈을 많이 벌고 노벨상을 많이 탄 것이 아니라 나라 없이 세계를 방황하면서도 2,000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유대인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다.

값있는 삶을 사는 것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새해에는 한인들도 이런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법을 배웠으면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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