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237)1968년의 제37대 대통령 선거①

2018-12-17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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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이나처럼 청중이 넋을 내놓고 귀를 기울리는 가운데 심장 깊은 곳을 짜내어서 울려 나오는것 같은 절규로 가득찬 “재선 불출마” 라는 aria 를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퇴장하면서 불르며 “LBJ 의 비극” 이라는 장편 Opera 는 막을 내린다. “LBJ 의 비극” 은 “Nixon 의 비극” 이라는 속편 Opera 로 연결된다.

두 Opera 중에서 어느것이 더 슬픈 것이었느냐 라는 해설은 음악평론가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모든 평론가들은 두 Opera 가 “대통령도 치외법권자 로써 법위에 군림하는것은 아니다” 라고 규정한 “미국의 헌법이 살아있다” 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는 점에는 일치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헌법에는 “군왕만큼,” 아니 어떤 면에서는 “군왕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을 부득이 필요에 따라 잔뜩 겁을 먹은채로 “국민의 손으로 뽑은”후에는 “삼권분립”이라는 제도로 권력의 집중을 제한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탄핵” 이라는 안전장치를 또 해놓았다. 필자는 혹시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President” 라는 영어를 한문을 공용하는 동양권내 에서 “오역”을 한 것이 아닐가 라고도 생각해본다.


“President”의 동사형은 “preside” 인데 그뜻은 “사회하다, 지휘하다” 쯤 되는 것으로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는 “군림하다” 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후 6년여간에는 “국회의장”만 (Continental Congress) 있었고 “대통령”은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역사에는 “탄핵”을 받은 대통령은 네명이나 있었지만 탄핵으로 “파면”된 대통령은 아직까지 한명도 없다. Nixon 은 탄핵이 거의 확정적이기는 하였지만 법적으로 탄핵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자진사퇴”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지금까지는 아주 복잡한 연극이 원작에 충실하게 맞추어 쓰여진 각본대로 잘 연출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사태를 관망 하느라고 조금 늦게 출사표를 던진 Robert F. Kennedy (RFK) 는 전국을 누비며 열심히 공천운동을 하고 다녔다. RFK 는 6월 5일에 공천대회 대의원 숫자도 많고 가장 중요한 주인 California 에서 승리하였는데 같은날 South Dakota 주에서도 승리 하였었다. 그는 Los Angeles 에 있는 Ambassador Hotel 의 무도장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간단한 감사연설을 마치고 모여드는 많은 축하객들을 피해 나가기 위해서 주방으로 들어 갔다.

RFK 의 반Islam/친 Israel 정책을 극도로 혐오했던 Jordan 국적을 가진 Palestine 인으로서 Jerusalem 에서 태어난 기독교인으로 12세에 미국에 이민을 왔던 암살범 Sirhan Bishara Sirhan 은 주방에서 RFK 에게 세발의 총격을 했고 RFK 는 그 다음날 사망하였다. 바로 두달전에 King 목사가 암살되었던 것을 기억 하는 미국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미국의 정치에 폭력이 난동하는것을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LBJ 가 3월말에 재선불출마선언을 하자 Hubert Horatio Humphrey 부통령은 대통령에 출마하기로 결졍하였다. Humphrey 는 어느 주의 공천투표에도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의 중진들의 지지를 많이 받아서 8월에 Chicago 에서 있었던 민주당 대통령후보 공천대회에서 1차 투표로 무난히 대통령후보로 공천되었었다. 그는 Maine 주의 Edmund Muskie 상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하였다.

공천대회때에 민주당은 반전파/참전파로 극도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대의원들도 Johnson/Humphrey 지지자들, RFK 지지자들, McCarthy 지지자들로 나뉘어져 있어서 서로 타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렬하게 분열되어 있었으며 당의 정강을 채택하기도 힘들었었다.

공천대회장 안에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시철망까지 쳐젔었고 질서유지를 위해서 경비원들까지 삼엄하게 동원되었었다. 전통적으로 미국정당들의 전당대회나 당공천대회 는 꼭 대학생들의 축제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아주 중요한 결정들을 하는 대회로서는 “경박”해 보이기가 일수이다. 송년파티에나 모인 사람들처럼 한잔씩 마시고 얼큰해 가지고 종이로 만든 파티용 모자를 쓰고 장난감 나팔들을 불어대며 자기편의 연설이 나오면 환호성을 질러 대다가는 반대쪽의 연설이 나오면 야유를 해대거나 아주 등을 돌리고 잡담들을 해댄다.


유럽과 남미에서 총격사건들까지 내며 살기등등한 정치집회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 놀라운것은 대게 후보가 선정되고 정강이 채택되고나면 분위기가 싹 바뀌면서 노래들을 합창하고 서로 축하하며 승리를 다짐하는 축제로 끝을 마치는 것이다. 외국에서 대회를 방청하러 오는 정치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광경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벙벙하다가 돌아가게 되는 미국식 정당 단합대회이다.

1968년의 민주당 공천대회장 안에서는 월남전쟁에 대한 당의 정강을 채택하려는 과정에서 부터 서로 욕설을 해가는 충돌이 일어났다. McCarthy/Kennedy 지지자들은 미국이 월남폭격을 즉시 중지하고 미군이 곧 월남에서 철수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월남에 모든 정당들이 참여하는 연합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Johnson/Humphrey 지지자들은 평화협상은 지지하지만 북월남군이 동시에 철수하지 않는한 미군만의 철수는 반대한다고 하였고 미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한 폭격을 중단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우여곡절끝에 Johnson/Hunphrey 측의 정강이 채택되자 반전파인 뉴욕주 대의원들은 장례를 상징하는 검은 완장을 팔소매에 끼었다.

대회장 밖에서는 수천명의 반전주의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Youth International Party 로 Yippie 라고 자처하던 젊은이들이 주동으로 민주당 공천대회를 욕을하며 조롱 하였었다. Yippie 들은 숫돼지, 암돼지 한쌍을 끌고 나와서 정부통령 후보들로 “공천” 하였었다. 서양 사람들에게 돼지는 가장 천한 동물의 상징이다. 질서유지에 난폭하기로 이름이 나 있는 Chicago 경찰이 진압차 출동하자 Yippie 들은 경찰에게 야유하고 욕을 퍼부으면서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금방 돌멩이까지 던지는 폭행을 하였는데 이들은 TV에 자기들의 시위가 생방송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서 먼저 폭행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Chicago 경찰도 난폭하게 경찰봉으로 시위대원들을 두들겨 패며 유혈이 낭자하게 진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대회장 안에서는 Humphrey 가 대통령후보로 공천을 받고 있었었다. 이날 날씨가 몹씨 더워서 시위대와 경찰 양측의 열기를 더욱 높였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생중계로 방송된 극렬히 분열된 민주당의 모양새는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할 형편이 아닌것처럼 보였었고 Humphrey 의 대통령선거는 시작부터 이미 산넘어 간것처럼 보였었다.

한편 8년째 야당노릇을 해왔던 공화당은 집권을 위해서 훨씬 더 단결되어 있었고 Miami 에서 개최된 대통령공천대회도 큰 잡음이 없이 전통적으로 점잖게 진행 되었었다. New York 의 Nelson A. Rockefeller 주지사와 California 의 Ronald Wilson Reagan 주지사의 도전이 있었으나 Richard M. Nixon 전부통령은 순조럽게 대통령후보로 공천이 되었다. 그는 Maryland 주의 Spiro T. Agnew 지사를 부통령으로 지명하였다. Agnew 는 원래 자유주의측 (liberal) 이었던 인물인데 King 목사 암살후 Baltimore 에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강력하게 진압 함으로써 인기가 올라간후에 법과 질서 (law and order) 의 ”대변자”로 변신한 사람이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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