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자 노동자, 또 다른 우리의 이름

2018-12-05 (수)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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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고 노회찬씨가 지난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 대표 수락연설의 첫 문장이다. 이 연설은 그의 명연설로도 꼽히고 있는데 그는 이 연설에서 아주머니들이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고 직장인이 있는 강남의 빌딩에 출근하지만, 이들은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잖은 노동자로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설의 취지였다.
사무실은 물론 복도, 로비, 화장실, 계단이 깨끗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자 아주머니들의 고된 노동의 결과이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그들은 있어도 없는 듯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그림자 노동자들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그림자 노동자들은 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에는 두 종류의 직원들이 있다. 하얀색의 배지(badge)를 달고 있는 직원과 빨간색 배지를 단 직원이다. 이중 빨간색 배지를 단 직원들의 업무 영역은 다양하다.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서 청소, 전화받기, 직원 충원, 유튜브 영상 스크린, 자율자동차 실험, 심지어 팀 전체를 관리하는 일까지다. 그야말로 7,950억짜리 회사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구글의 높은 연봉 제도에서뿐 아니라 모든 복리후생 혜택에서 철저히 제외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알파벳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그림자 노동자’(shadow workers)라고 묘사했다.

그림자 노동자가 있다면 ‘그림자 노동’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이라는 책에서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렀다.

한인타운 웨스턴 애비뉴에 있는 랄프스 마켓의 무인계산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줄을 서지 않고 빠른 시간에 계산을 마치고 마켓을 나설 수 있다는 편리함이 무인계산대에 장점이다. 하지만 무인계산대가 아니었으면 마켓에서 고용한 사람이 했을 일이다. 손님으로 마켓에 왔지만 무인계산 노동을 한 사람에게 마켓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림자 노동자가 나와는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지만 그림자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듯싶다. 결국 그림자 노동이 우리 삶을 점점 점령해가는 한 그림자 노동자를 찾는 일은 더 어려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림자 노동자는 바로 나 자신이면서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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