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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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2018-11-30 (금) 홍콩=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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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역사·노을과 불야성…홍콩에서의 36시간

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아열대 식물이 뒤덮인 숲. 빌딩 숲 위에 또 다른 공중 정원이다.

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린흥티하우스의 종업원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좁은 지역에 볼거리 먹거리가 몰려 있는 도시, 동서양의 매력이 조화롭게 녹아있는 홍콩은 주말을 끼고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로 매력적이다. 홍콩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1.8배지만, 도심이라 부르는 곳은 홍콩 섬 북측과 구룡반도 남쪽 지역이다. 2박 3일 일정 중 실제 도심에 머물렀던 36시간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첫날 오전 11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 타이퀀
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에스컬레이터(왼쪽)과 나란히 계단이 이어진다. 등산이나 다름없지만 한두 구간은 걸어볼 만하다.


홍콩에서도 가장 홍콩다운 곳을 꼽으라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 Level Escalator)다. 길이 약 800m,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로 홍콩 섬 중심부 퀸스로드에서 고급 주거지인 미드레벨까지 운행한다. 미드레벨의 지형은 부산의 산복도로 주택가를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20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일직선으로 연결돼 저지대에서 산 중턱까지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른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계단이 함께 있다. 온전히 걸어야 한다면 등산이나 다름없지만, 한두 구간은 재미 삼아 걷을 만하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관광객을 겨냥한 레스토랑과 카페, 바가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출근하는 시민들을 위해 아침 시간(오전 6~10시)에는 위에서 아래로 운행하고, 이후 자정까지는 상행으로 운행한다. 끝까지 올라가는데 약 20분이 걸린다. 공항철도를 타면 홍콩역, 지하철로는 센트럴역에서 걸어갈 수 있다.


골목으로 빠지면 홍콩의 속살이 좀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지점이나 난간에 주변 관광지가 표시돼 있어 찾아가기 편하다. 홍콩 센트럴에서 요즘 가장 뜨는 곳은 타이퀀(Tai Kwunㆍ大館)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큰 집’인데, 감옥을 속되게 이르는 한국식 표현과 뜻까지 같다. 할리우드로드에 꽤 큰 블록을 통째로 차지한 타이퀀은 원래 ‘중구경찰서(Central Police Station)’였다. 경찰서 뒤편에는 법정과 감옥이 붙어 있었다. 말하자면 체포에서 수감까지 ‘원 스톱’으로 사법 처리가 이뤄진 곳이다.

외부에선 높은 담장에 막혀 있지만 내부는 16개의 건물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1864년에 지은 타이퀀은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됐고, 약 10년간 개선 작업을 거쳐 아트갤러리와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죄수를 가뒀던 철창과 면회실, 운동장은 설치미술과 영상을 결합한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홍콩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있는 셈이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오아시스 같은 휴식처이자 SNS용 사진을 찍는 명소다.

#오후 5시

하버시티 오션터미널 전망대 일몰
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하버시티 오션터미널덱 일몰. 홍콩 섬 오른쪽 빌딩에서 바다로 해가 진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홍콩 섬에서 구룡반도로 이동했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벗어나야 하듯, 구룡반도로 나와야 홍콩이 제대로 보인다. 지하철로 이동해도 되지만 배가 더 빠르다. 센트럴 7번 부두에서 스타페리를 타면 10분 만에 바다 건너 하버시티에 닿는다.

하버시티는 의류상점, 식당, 엔터테인먼트 시설까지 갖춘 홍콩 최대 복합쇼핑몰이다. 최근에 여행객이 꼭 들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지난 5월 증축한 오션터미널 옥상에 전망대(Ocean Terminal Deck)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오후 10시까지 무료로 개방하는데, 5층 건물 끝에 위치하고 있어 3개 방향으로 전망이 툭 트였다. 해질녘이면 홍콩 섬을 가로지른 태양이 섬 끝자락으로 떨어져 고층빌딩과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일몰이 펼쳐진다. 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던 노을이 서서히 사그라지면 홍콩은 다시 화려한 밤을 맞는다.

하버시티는 오션터미널 전망대에서 부정기적으로 이벤트를 펼친다. 이달 초에는 ‘일몰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100홍콩달러(약 1만5,000원)로 칵테일이나 와인 한 잔과 간단한 안주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이벤트가 아니라도 홍콩의 노을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둘째 날 오전 10시


‘얌차 집’에서 늦은 아침

이튿날 아침 성완 지구의 린흥티하우스(蓮香樓)를 찾았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식당이기도 하고 찻집이기도 하다. 여행객은 딤섬식당으로 알고 있지만, 홍콩에서는 ‘얌차 집’으로 부른다. 얌차는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홍콩 특유의 음식문화다. 종업원이 갖가지 요리를 손수레에 실어 테이블 사이로 이동하면, 손님이 식성에 맞게 선택하는 이동식 뷔페다. 때문에 맛있는 요리를 선점하기 위해 주방에서 가까운 자리가 인기 있다. 현지 주민들은 주로 한두 가지 음식을 선택해 차와 함께 느긋하게 식사를 즐긴다. 1926년 문을 연 린흥티하우스는 홍콩에서도 몇 남지 않은 정통 얌차 집이다. 모든 요리는 가공품을 쓰지 않고 직접 만든다. 퓨전 입맛에 길들여졌다면 향이 조금 ‘중국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수레를 미는 종업원이 모두 노인이라는 것도 특이하다. 서비스에서 노련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미식의 도시 홍콩에서는 연중 음식과 관련한 축제가 열린다. 10월에는 홍콩관광청 주최로 ‘와인 & 다인 페스티벌(HKTB Wine & Dine Festival)’이 열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참가한 업체가 하버프런트 이벤트 광장에 450개의 부스를 차렸다. 2008년 알코올 30도 이하의 술에 주세를 없앤 후, 홍콩은 세계 와인 경매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와인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포도밭 하나 없는 나라가 세계 최고의 포도주 왕국이 된 셈이다. 11월에는 16곳의 미슐랭 레스토랑이 참여하는 ‘그레이트 노벰버 축제’로 다시 한번 미식의 도시를 알린다. 홍콩관광청은 광둥 요리점 ‘푹람문(Fook Lam Moon)’, 홍콩 최초의 양식당 ‘지미스키친(Jimmy’s Kitchen)’, 유럽풍 퓨전 레스토랑 ‘더피크룩아웃(The Peak Lookout)’을 추천 식당으로 꼽았다

#오후 2시

빌딩숲 위의 공중 산책 ‘루가드로드’

화려한 조명과 스카이라인만이 전부는 아니다. 홍콩에도 4개의 트레일 코스가 있다. 여행객이나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홍콩 섬 꼭대기의 ‘루가드로드(Lugard Road)’. 센트럴 뒤편 타이펑산(太平山ㆍ554m) 8부 능선을 한 바퀴 돌아오는 평탄한 산책로로,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피크타워’ 전망대에서 출발한다. 루가드는 홍콩의 14대 총독 이름이다. 3.5km 원점 회기 코스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오른편으로 도심을 내려다보며 조금만 걸으면 예상 밖의 울창한 숲이 반긴다. 빼곡한 빌딩숲 위에 또 하나의 아열대 숲이자 공중정원이다. 길을 따라 이동하며 전망은 도심에서 바다로 변하고, 홍콩 섬의 남부 경관도 감상할 수 있다. 피크타워 전망이 도심에 고정된 액자라면, 루가드로드 전망은 홍콩의 앞뒤를 두루 살피는 느린 동영상이다. 산책이 끝나면 피크트램이나 1번 미니버스를 타고 센트럴로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루가드로드 중간에서 해튼로드(Hatton Road)로 빠져 홍콩대학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오후 8시

센트럴의 잠 못 드는 밤

홍콩 센트럴은 어둠이 내리면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 낮에 걸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불야성이다. 차분해 보였던 좁은 거리 양편이 온통 바와 카페다. 특히 할리우드로드 일부 구간은 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스탠딩 파티장’으로 변한다. 익명의 자유에 한껏 취하는 해방구다.

북적대는 거리를 피해 퀸스로드의 ‘스피크이지바’를 찾았다. 스피크이지바는 1920년대 금주령이 내려진 미국에서 뒷골목으로 숨어든 술집을 의미한다. 포팅어호텔의 ‘룸309’도 겉모습은 309호 객실처럼 위장하고 있다. 호텔의 또 다른 바에서 카드 키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어두운 실내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찼다. 분위기에 취하고, 화려한 색깔의 칵테일에 취한다. 주인장 안토니오 라이는 홍콩 최고의 바텐더다.

홍콩식 노천 포장마차 ‘다이파이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이파이동은 ‘큰 간판을 단 노점’이라는 뜻이다. 홍콩 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과 구룡반도의 침사추이 골목에 많다. 다이파이동의 주 메뉴는 채소와 해산물이 들어간 다양한 볶음요리다. 길거리 요리사의 정교한 칼질과 화려한 손놀림도 볼거리다. 중화요리의 필수품인 웍(wok)에서 올라온 하얀 김이 가로등 불빛을 타고 홍콩의 밤하늘로 번진다. 오후 11시가 되자 종업원의 손길이 바빠진다. 36시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빌딩숲 사이, 첨단과 전통 뒤섞인 골목 속으로 (홍콩)

경찰서와 감옥에서 예술공간으로 거듭난 타이퀀. 빌딩에 둘러싸인 센트럴에서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홍콩=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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