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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깊은 곳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온 희귀 손님들

2018-11-28 (수)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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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0피트 바닷속 ‘트와일라잇 존’ 해양생물 모습 드러내

바다 깊은 곳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온 희귀 손님들

약광층에 서식하는 랜턴피시의 모습. 약광층에는 약 250종의 랜턴피시가 서식하고 있다.

바다 깊은 곳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온 희귀 손님들

가늘고 긴 모양의 브리슬 마우스 피시. 날카롭고 투명한 송곳니가 인상적이다.


바다 깊은 곳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온 희귀 손님들

먹물 대신 변장술로 천적을 피하는 유리 오징어. <폴 케이거-우즈 홀 해양연구소/뉴욕타임스 제공>


푸른빛이 아름다운 바다 표면에서 깊이 들어가면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암흑의 바다가 시작된다. 깊이로는 해수면에서 약 660피트로부터 약 3,300피트에 이르는 이 구간은 암흑이 지배하는 ‘약광층’(Twilight Zone)으로 그간 생명체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지역으로만 여겨졌다. 최근 해양 과학자들의 탐사에 의해 약광층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들이 드디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탐사를 주도한 ‘우즈 홀 해양 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의 하이디 소식 생물학자는 “약광층은 그동안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바닷속 미지의 영역”이라며 “탐사가 진행될수록 약광층이 전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흥미롭고 중요한 역할이 발견되고 있다”라고 탐사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약광층에 대한 이번 탐사는 지난 8월부터 우즈 홀 해양 연구소 주도로 진행됐다. 약광층에는 이미 개발된 어장의 해양 생물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해양 생물의 존재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어떤 종류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특수 음파 탐지기 동원된 탐사

해양 동물에게는 저마다의 독특한 음파 반사 반응을 보인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은 수중 음파를 발사한 뒤 반사해 오는 시간을 통해 해양 동물을 탐지한다. 고래 관광선이 혹등고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음파 탐지기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약광층에 서식하는 해양 동물이 소리에 반응하는 방식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알려진 바가 적었다.

선상의 수중 음파 탐지기로 심해 산란층보다 더 깊은 곳의 생명체를 구별하기에는 대역폭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심해 산란층은 생명체가 풍부해 한때 해저로 여겨진 지역이기도 하다. 심해 산란층에는 약 250종에 달하는 심해성 발광어가 두꺼운 층을 이뤄 서식하고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어류 한 마리의 크기는 집게손가락 크기에 불과하지만 여러 마리가 두터운 층을 이뤄 밀집 서식하기 때문에 수중 음파 탐지기의 음파가 통과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다.

대서양에서 약 10일간 이뤄진 이번 탐사에서 탐사팀은 ‘딥 시’(Deep-See)로 불리는 특수 탐사 장비를 동원했다. 탐사팀은 딥 시를 사용해 탐지한 주파수 대역과 약광층 해양 생물들의 사진 및 DNA와 짜 맞추는 방식으로 탐사를 진행했다. 탐사팀은 해양 동물의 상태를 살아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포획에 사용된 저인망 끝에 어항을 설치했다.

◇작지만 강하다

심해어류인 ‘브리슬 마우스’(Bristlemouth)가 이곳 약광층에서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척추동물이다. 소식 박사에 따르면 브리슬 마우스는 가늘고 긴 모양의 발광 물고기로 자세히 보면 ‘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길이는 25센트 짜리 동전의 지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다. 소식 박사는 “약광층에는 먹이가 매우 희소하기 때문에 해양 동물의 크기가 매우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작다고 얕보면 큰코 다친다. 사람 손에 잡힐만한 크기의 ‘바이퍼 피시’(Sloane’s Viperfish)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자랑하는 ‘험악한 놈’이다. 폴 케이거 우즈 홀 해양연구소 생물학자는 “바이퍼 피시는 이 구역에서 ‘포식자’로 군림하는 물고기”라며 “며칠 굶주린 뒤에 잡은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 끈질긴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바이퍼 피시의 가장 큰 특징은 몸체에 비해 눈에 띄게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다. 입에 비해 이빨이 너무 커 마치 감옥의 쇠창살처럼 보일 정도다. 바이퍼 피시에게 잡혀 입에 넣어진 먹이는 목으로 넘겨지기 전 일단 ‘죄수’ 신세를 거쳐야 한다.


◇ 존을 위한 ‘발광’은 기본

약광층의 또 다른 주민인 ‘해칫피시’(Hatchetfish)는 몸속에 발광 기관을 보유한 물고기다. 해칫피시뿐만 아니라 심해인 약광층 서식 동물 중에는 발광 기관을 보유한 동물이 많다. 화학 작용을 통해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불빛을 몸에서 만들어 내는데 생존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기관이다.

해칫피시는 천적이 나타나면 발광과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바다 표면에서 내려온 한줄기 빛에 자신의 몸을 감쪽같이 감춘다. 해칫피시의 빛을 활용한 이 같은 위장술은 ‘반대 조명’(Counter Illumination)이라고 하는데 약광층 서식 동물들이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발광 기능이다. 해칫피시는 이 밖에도 몸을 투명하게 하거나 거울처럼 바꾸는 위장술도 사용한다고 탐사팀은 밝혔다.

◇아무리 캄캄해도 감각은 있다

약광층 해양 동물들은 빛이 없는 어두운 환경에서 물체를 감지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랜턴 피시’(Latern Fish)는 눈동자를 크게 확대시켜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송곳니 물고기’(Fang Tooth)는 여러 물체와 부딪혀 본 뒤에야 비로소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 또 압력 감지 기관을 통해 주변 물체나 해류, 다른 동물의 움직임을 감지하기도 하고 물체가 근접한 경우 점액성 코팅이 주변 화학 물질을 감지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일반 오징어와 다른 생존 방법을 보이는 오징어도 있다. 천적에게 먹물을 뿌려 시야를 막은 뒤 도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오징어의 생존법이라면 약광층에 서식하는 오징어는 천적의 눈앞에서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기술을 갖고 있다. 사람 주먹 크기의 약광층 오징어는 천적이 나타나면 촉수와 머리를 몸속으로 집어넣은 뒤 먹물로 채워 ‘밥맛 떨어지는 모습’으로 변해 천적의 눈길을 피한다.

◇ 제껏 알고 있던 ‘해저면’은 가짜

미 해군이 음파 탐지기를 사용해 해양 조사를 시작한 1930년대에 대부분의 음파가 반사되는 층을 발견하고 이곳이 해저면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후 해수면과 해저면까지의 깊이가 밤과 낮에 따라 바뀌는 것이 발견됐고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 결과 수많은 무리의 심해어류들이 바다 표면에서부터 수천 피트에 달하는 깊이까지 해류를 타고 밤낮으로 이동하면서 형성한 ‘가짜 해저면’인 것으로 발견됐다. 최근 조사에서도 상어나 참치, 황새치와 같은 해수면 인근에 서식하는 어류들이 먹이 어류의 이동을 따라 낮에는 바다 깊은 곳까지 이동하는 것이 관찰됐다. 현재 해양 과학자들은 각기 다른 생명체가 서식하는 바닷속 먹이 사슬 층이 기후 변화의 원인일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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