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33) 제36대 Lyndon Baines Johnson 대통령⑦

2018-11-19 (월)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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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보다 더 예리한 “붓”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남을, 더구나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강제적 권력을 동원하는데 흔히 권력의 상징은 예리한 칼이다. 그런데 칼 앞에서는 굴종을 하지만 돌아서면 원상복귀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설득이 되면 완전히 돌아서는 속성도 있다.

일시적인 복종은 칼로 받아낼수 있지만 완전한 전향은 말이나 글을 써서 설득을 해야 하는데 설득에는 날이선 칼보다는 부드러운 붓이 훨씬 더 알맞는 도구이다. 역사의 전환점에서 총과 칼이 더러 효과적으로 쓰이는 수는 있지만 붓이 쓰이지 않은 채로 전쟁이나 혁명등이 성공해 본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역사의 공통분모는 칼이 아니라 붓일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읽어보면 몸에 닭살이 돋도록 강렬하게 감명을 주는 Karl Marx 의 “공산당선언” 이 없었다면, 또 수천 acre 의 농토와 수백명의 노예들을 유산으로 받았었으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라고 주장한 얼핏 문면 대로만 들으면 몹씨 모순이 되는 Thomas Jefferson 의 “독립선언서” 가 없었던들 오늘같은 세계가 있을수 있었겠는지! 이 인류의 역사를 뒤엎은 글들이 칼이 아니라 붓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미국도 역사적인 전환기 마다 기폭제 역할을한 글들이 국민과 정치, 사회의 지도자들을 움직이게 만들어서 독립을 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실천하도록 만들었으며 문화와 과학이 발달되도록 하였다. 1960년대에도 “평범한” 사람들이쓴 극히 “상식적”인 글들이 어떻게 LBJ 를 통하여 “혁명적”인 변화가 오도록 하였는지 두어개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John Hopkins University 를 졸업한 Rachel Carson이라는 여성 해양생물 학자가 있었다고한다. 해양생물 학자로써도 명성이 있었던 Carson 은 “과학자답지 않게” 시적으로 아름다운 글을 잘 썼었던 것 같다. 그녀는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해안의 해양생물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단편소설 처럼 잘 써서 작가로써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1962년에 밝고 명랑했던 그전의 글들과는 판이하게 우울한 “Silent Spring” 이라는 책을 써서 독자들의 폭풍적인 관심을 끌었었다고 한다. 이책은 아름다운 해양생물 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고 독자들에게 씁쓸한 우울증을 남겨주는 엉뚱한 소재에 대한 글이었다. 무슨 얘기이었을가?

그녀는 살충제들이, 그중에서도 특별히 DDT 가 모든 사람들이 상상할수도 없을 정도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아마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초,중등학생이 었던 모든 독자들께서는 꼭 밀가루처럼 보였던 DDT 를 기억 하시리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거의 전국민들이 손으로는 미쳐 다 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와 벼룩을 이불에, 장롱에, 옷장에, 입고 있던 옷에 가지고들 살았었다. 조선인들의 건강을 염려했던 미군정청은 학교마다 살충제를 트럭으로 실고 와서는 풀무기로 DDT 를 학생들의 저고리, 바지, 셔츠, 속옷으로 품어 넣었었다.

DDT 풀무를 받은 학생들은 밀가루통에 빠졌다가 기어 나온 사람처럼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흰가루 투성이 었었는데 이와 벼룩이가 박멸 될것만을 생각해서 고마워 했었다. 막상 풀무기를 작동했던 미군병사들은 그 DDT 를 얼마나 코로 마셨을 것인지 지금도 생각하면 끔직한 일이었다.

원래는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DDT 가 살충을 위해서 자연환경에 뿌려 지면 해충들이 박멸되어서 좋기는 한데 이 죽은 해충들이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문제 이었다. DDT 가 먹이 사슬을 따라 점점 더 큰 조류들까지 멸종을 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었다. Carson은 어느 봄날에 사람들이 일어나 보면 사방이 적막한 Silent Spring 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래하는” 새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에서는 새는 “우는데” 서양에서는 “노래를 한다”니 흥미로운 감상의 차이이다.

Carson 은 국민 모두가 알수있는 소재로써 “생태학” (Ecology) 에 대한 극적인 교육을
한것이다. 생물과 주위환경과의 상호 영향관계의 연구의 필요성을 경각시켰던 것이다. Kennedy 대통령은 Carson 이 제기한 생태학적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임명하였 으나 그 위원회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결론까지는 도출해 내지는 못하였었다.

Carson 이 시작한 생태학에 대한 연구는 다른 방면에도 유사한 관심들이 쓰여지게 만들었다. 천적이 드문 해충을 멸살시켜주는 DDT 가 자연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인체에도 해로웠던것 처럼 그야말로 인류를 원시 시대에서 해방시켜준 모든 engine 에서 나오는 탄산가스와 공장들이 뿡어내는 매연들은 모든 생물들이 호흡해야하는 공기를 오염시켜 가고 있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LBJ 는 국회를 설득하여 자동차 engine 들과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들을 통제하는 법률들을 입법하게 하였다.


그런데 또 미국의 호수들과 강들은 광산들과 공장들에서 무절제하게 방출되는 화학약물로 오염되고 있었었고 미국 전역의 야산들과 들에는 폐차들을 무질서하게 쌓아놓아 자동차 공동묘지처럼 “시야의 오염”을 하였었고 Highway 마다 무절제하게 우후죽순처럼 세워놓은 초대형 광고 간판들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었었다. Lady Bird 는 Highway 를 미화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녔는데 결국은 폐차장들은 높은 담장들을 쌓아서 폐차들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으며 초거대 광고간판 수를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살충제와 화학약물의 사용을 규제하는 법들이 입법 되었었다.

1960, 70년대에 “공익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던 Ralph Nader 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변호사로써 한참 돈을 많이 벌었어야할 나이인 30, 40대를 정부, 대기업,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로운 언변으로 TV 등 각종 언론매체에 폭로, 비판하고 다녀서 미국사람들의 칭송과 신뢰를 받고 있었던 까닭에 아무런 사건이라도 맡아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지는 못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대통령에도 세 번이나 출마하여 국민들의 관심은 끌었었으나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그때마다 진보측인 민주당 후보의 표를 깍아먹는다는 비난도 받았었다. 그는 31세이던 1965년에 “Unsafe at Any Speed” 라는 책을 써서 일약 모든 미국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명사가 되었었다.

Nader 는 이 책에서 1965년도에만 5만명의 미국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것이며 4백만명이 부상을 입을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자동차 사고의 책임이 부실한 차들을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회사들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동차회사들은 자동차의 “판매”에만 열중하여서 “안전”에는 소홀하다고 주장하였다.

자동차회사들은 Styling 과 판매촉진을 위한 잔재주 개발에 온갖 정성을 들여서 막상 안전은 뒷전으로 몰린 까닭에 Bumper 는 시속 3마일의 충격도 견더내지 못하고 차체도 튼튼하지 않다고 지적 하였다. Nader 가 시작한 이 자동차 안전운동은 국민적인 큰 반응을 일으키고 국회도 움직이게 만들어서 Highway Safety Act of 1966 이 입법되도록 하였다. 이 법은 새자동차 와 Tire 의 안전기준을 규정하였다.

이 무렵처럼 미국국회가 다양한 사회적 법률들을 많이, 또 빨리 입법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LBJ 의 임기중이던 1965년에서 1968년까지 500 여개의 개혁적인 법률들이
입법 되었었다고 한다. LBJ 에게 주어진 새로운 책무는 이 새 법들을 집행해야할 인재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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