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이 전부가 아닌 결정들

2018-11-14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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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 다음날 언론계 지인들과 가진 점심자리에서. 개스세 인상 철회를 골자로 한 ‘주민발의안 6’ 부결이 화제에 올랐다. 주민발의안 6은 찬성 44.7%, 반대 55.3%로 부결됐다. 유권자들이 개스세 존속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개스세를 없애자는 발의안을 주민들이 거부한 게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왜 주민들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를 놓고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올린 갤런 당 12센트(일반 개스)와 20센트(디젤)의 개스세를 없애자는 이 발의안을 놓고 찬반 양측은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으며 치열한 캠페인을 벌였다. LA시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은 인프라 구축을 위해 개스세가 꼭 필요하다며 발의안을 반대한 반면, 캘리포니아 공화당과 몇몇 세금단체들은 철회를 주장했다.

보통의 운전자들은 갤런 당 몇 센트 더 싼 개스를 찾아 먼 곳의 주유소 찾기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개스 값에 민감하다. 운전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 입장에선 당연히 철회를 지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고, 실제로 찬성 캠페인측은 이런 이유로 유권자 설득이 손쉬울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개스세 철회를 거부했다.


전통적 경제이론은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흔히 ‘이기적 유전자’로 상징되는 이런 이론은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 반론을 제기하는 연구와 학설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현상들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가 자신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에서 인용한 스위스 핵 폐기장과 관련한 주민들의 태도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핵 폐기장 후보지로 선택된 한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그냥 찬반을 물었을 때 주민들의 51%가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좀 더 확실히 주민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매년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후 조사를 했더니 찬성이 오히려 51%에서 25%로 뚝 떨어졌다. 보상금 액수를 한층 더 높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통념을 뒤엎는 이 현상을 연구한 학자들은 “공공정신이 뛰어난 스위스 시민들은 재정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자 시민의 문제를 금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거부감이 커진 것”이라 분석했다. 자신들의 선한 의도가 뇌물의 문제로 변질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스위스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경제적 형편도 다르고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제각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항상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소한 증거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가 여행 중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그래서 종업원의 얼굴을 또 다시 마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식당에서 후한 팁을 놓고 나오는 행위는 이기적 유전자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익과 비용이라는 경제적 합리성을 잣대로 따진다면 11월 6일 투표장에 나갔던 유권자들의 행위 또한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후보와 정책을 잘 따져보고 선거 당일 투표장에 나가는 데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에 반해 투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불분명하다. “내 한 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까”라는 회의적이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쫓아 행동하긴 하지만,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항상 사익을 우선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선택은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가치와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는 말이다. 개스세 유지로 향후 10년 간 조성되는 기금은 540억 달러에 달한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만큼 이 돈은 이들의 뜻과 세금의 취지에 부합하는 곳에 제대로 잘 쓰여야 할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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