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단체의 종교 편향

2018-11-10 (토)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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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난데일 로타리 클럽 회원으로 있은 지가 이제 20년이다. 1998년에 샤론 불로바 현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장이 어느 날 나에게 자신이 소속된 이 로타리클럽 가입을 권했다. 그 때 나는 브래덕 지역 교육위원이었는데 로타리클럽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 유익한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가입하기로 했다. 또한 신출내기 선출직 공직자로서 미국 주류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할 필요도 느꼈다.

가입 원서 제출 후 승인 통지를 받는데 예상 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중에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나의 가입 신청에 논란이 조금 있었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물어보지 않았다. 얘기해줄 사람도 없었겠지만, 나 또한 유쾌하지 않을 내용일 텐데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정치적인 이유였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도 민주당원이었는데 내가 가입할 때 애난데일 로타리클럽에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더욱이 애난데일 토박이 강성 보수 공화당원들이 제법 있었다. 어쨌든 나름대로 어렵게 가입했기에 더욱 열심히 활동해서 한인계 회원도 한 몫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20년간 꾸준히 클럽 멤버로 있어 오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애난데일 클럽에는 이렇게 정치색 뿐만이 아니라 종교색이 강한 회원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클럽 활동이 지역 중심적이다 보니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같은 정당 뿐 아니라 같은 교회 소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적, 종교적 색채가 뚜렷한 회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애난데일 클럽은 여느 로타리클럽과 마찬가지로 정치나 종교단체는 아니다. 단체의 정관에도 그러한 색채 표명이 없고, 오히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렇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두라고 권장하면서도 정치단체가 아니고,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단체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로타리클럽 모임은 일반적으로 식사와 같이 한다. 애난데일 클럽은 매주 수요일 점심식사 시간 때 모인다. 그리고 식사 전에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대표로 기도를 인도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때의 기도가 기독교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클럽 회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기독교식으로 기도할 수 없는 것은 클럽의 문호가 종교와 상관이 없이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는 클럽 활동에 대한 일반적 감사와 클럽의 사명을 상기시키는 내용의 비종파적 내용으로 하게 된다.

이런 형태의 기도는 내가 지역 주류 사회의 여러 행사들에 참석하면서 종종 접한다. 저녁 식사가 포함되는 행사에는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기도를 드리는데, 대표 기도자가 심지어 성직자라 할지라도 특정 종교 의식에 맞춘 기도를 하지 않는다. 물론 행사 자체가 특정 종교 단체의 행사라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한 참석자 가운데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종파적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예의라고 여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인사회 단체 행사에서는 종종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본다. 많은 행사에서 특정 종교의 성직자는 본인의 종교 의식에 맞춘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 그러한 기도는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나 무종교자들에게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적 편파성이나 차별로 여겨져 자칫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특정 단체의 형성 이유나 목적이 종교적인 게 아니라면 종파적 색을 배제해야 한다.

우리 한인들 모두 미국에서 소수 인종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소수성을 벗어나려면 아마 수백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백인들이 나에게 자신들의 방식대로 모든 것을 따라 하라고 한다면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자신이 소수 인종의 일원이기에 내가 소수의 권리 보호에 더욱 민감한지 모른다. 이러한 소수의 권리 보호와 존중은 인종문제를 넘어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종교 신봉자들이 다수라고 해서 소수를 다수의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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