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인인구가 줄면…

2018-10-31 (수)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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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한동안 자녀를 3명 이상 둔 부부들이 기를 못 폈다. 관공서마다 으레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딸만 둘 낳은 부부들이 아들을 바라고 계속 출산하는 ‘구태’를 경계한 슬로건이다. 그 무렵 가임 여성들에겐 IUD 같은 피임기구들이 보급됐고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선 정관절제(vasectomy)가 공짜로 시술됐었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허전한 한 자녀, 흐뭇한 두 자녀, 든든한 세 자녀” “낳으세요! 오늘의 행복, 키우세요! 내일의 희망” “자녀는 평생선물, 자녀끼리 평생친구” 등 슬로건이 출산장려 쪽으로 180도 바뀌었다. 다자녀를 복으로 여겼던 한국인들의 출산율이 어느새 금년 안에 1명 미만으로 떨어져 지구촌의 유일한 0점대 국가가 될 전망이다.

한국 통계청은 올해 8월 출생아가 처음으로 3만명 선 아래로 떨어져 2만 7,300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년 8월보다 2,800명 줄었다. 연도별 같은 달 끼리 비교할 경우 2016년 4월부터 올 8월까지 29개월간 연속적으로 줄었다. 올 1~8월 누적 출생아 수는 22만 6,000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8.7% 줄었고 1981년 신생아 통계작성 시작 이후 가장 적었다.


일본은 출산율이 1.43으로 한국(1.05)보다 훨씬 높지만 위기의식은 매한가지다. 지난해 신생아 수가 94만 6,000명으로 전해보다 약 3만명 줄었고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121만명 분의 노동력이 부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2년 후인 2030년엔 이 수치가 644만명 분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노동대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한다.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억제 정책을 계속 강화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예전처럼 아기를 많이 낳아주지 않아 은근히 마음을 졸인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총 385만여 명이었다. 전해보다 2% 줄었고 지난 30년간 역대 가장 적었다. 가임 여성이 1,000명당 아기를 2,100명은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지난해 실제 출산율은 1,000명당 1,760명에 그쳤다.

작년 신생아 385만명 중엔 백인이 대략 199만여명, 히스패닉이 90만명, 흑인이 56만명, 아시안이 25만명, 인디언 원주민이 3만명, 태평양계가 1만명이었다. 수치상으로는 백인이 작년 신생아의 절반을 웃돌지만 전체 인구에서 백인이 점유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백인인구 감소는 전체 신생아 감소보다 더 큰 현실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요즘 백인들 중엔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 고령 사망자 외에 사고나 마약남용 사망자도 많기 때문이다. 백인 사망자가 백인 신생아를 앞선 주는 지난 2014년 17개 주였지만 2년 후엔 과반인 26개주로 늘어났다. 백인이 전체인구의 50% 밑으로 떨어져 소수민족이 될 해가 2045년으로 추정돼왔지만 인구 전문가들은 그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본다.

이처럼 급격한 백인인구 감소는 백인사회의 결속을 부추겼고,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는 백인 사망자가 신생아보다 많은 26개 주 중 13개주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승리했지만 이들 13개주 중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4개주에선 4년 전 선거 때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었다.

백인인구가 계속 줄어들수록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이 더 똘똘 뭉칠 것은 자명하다. 오는 2020년 대선에서도 대학졸업장 없는 백인들이 전체 유권자의 44%를 점유해 최대 단일 ‘킹메이커 그룹’으로 군림한다. 공화당후보가 트럼프처럼 이들의 비위만 잘 맞추면 2036년 대선까지, 비록 일반투표에서는 뒤져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겨 당선될 터이다.

나는 초중고교 시절 한 반에서 60명 이상이 공부했지만 콩나물 교실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반세기가 지난 요즘은 학생이 없어 문 닫을 학교가 태반이란다. ‘인구절벽’이라는 비명도 들린다. 하지만 내 보기에 한국은 여전히 땅에 비해 인구가 많다. 이민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가뭄에 콩 나듯한 요즘 신생아들의 장래 노인부양 부담도 가벼워진다.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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