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2018-10-2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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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한 공해상의 작은 산호초, 아니면 물에 잠긴 바위덩어리에 불과하다. 거기에 모래와 자갈, 시멘트를 부어 인공 섬을 만든다.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라는 주장과 함께. 그 인공 섬이 완성된다.

그러자 드러난 모습은 군사기지다. 포좌가 설치되고 군부대가 주둔한 것이다. 그리고는 지나는 선박, 항공기 등에 행패를 부린다. 민간 선박은 말할 것도 없다. 미 해군 함정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멀쩡한 공로(公路)를 막고 통행세를 받겠다는 것과 비교될까. 중국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 같은 횡포에 나선 것일까.


2,000기가 넘는 각급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했다. 사거리는 남중국해를 포함한 서태평양해역 전체로 이 해역에 출동하는 미 해군함정은 물론, 미군기지들도 겨냥하고 있다. 바로 그 미사일전력을 믿고 도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반(反)접근-지역거부(A2/AD)‘전략이 그것이다. 서태평양해역에 미 해군의 항모전단이 접근해오는 것을 아예 차단하겠다. 이를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지대함 탄도 및 순항미사일을 계속 개발해 배치해 놨다. 그 주종 미사일은 ‘항모 킬러’로 불리는 ‘둥펑’급 미사일이다.

그렇지만 대만 침공 등 미국의 대대적 반격을 불러올 정면도전은 회피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등 작은 나라들을 위협하고 인공 섬 조성 등을 통해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드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의 작은 섬 때문에 핵 공격은 해오지 못할 것이란 거다. 이를 살라미작전이라고 했나. 그 작전은 주효했다. 그리고 어느덧 서태평양에서 중국과 군사충돌이 발생할 때 미 해군의 우세를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뭔가 근본적이고, 새로운 접근 전략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워싱턴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그 정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마디 하고 나섰다.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위반해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바로 응수에 나서면서 세계는 또 떠들썩해졌다. 핵전력 경쟁이라는 냉전시대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모스크바가 타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의 INF탈퇴 발언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1987년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INF를 맺을 때 중국은 그 파워가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 조약 당사자가 아닌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악용해 중국은 각급 미사일개발과 증강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둥펑’계열로 불리는 미 항모 킬러 미사일이다. 거기다가 베이징은 항모를 발주하는 등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중국의 미사일 전력과 해군력을 일거에 무력화 시키는 작전이 바로 INF 탈퇴다.

INF의 규제에서 벗어나면 미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각급 중, 단거리 미사일을 태평양지역에 배치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음속의 5배에 이르는 초음속 무기배치도 가능하다. 말하자면 미국 판 ‘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을 바로 가동할 수 있는 것.

괌. 필리핀, 일본 등지에 미국의 지대함 탄도 및 순항미사일 등이 빽빽하게 배치된다. 그렇게 되면 만일의 군사갈등 발생 시 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해상 방어선인 ‘제1 도련선(island chain, 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안의 해역은 ‘무인지대’가 된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핵은 물론 재래병력에서도 미국은 압도적 우위를 점령하게 된다는 거다.

무엇을 말하나. 중국해군의 ‘제 1도련선’ 돌파는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베이징 입장에서는 최악의 악몽 시나리오다.

“트럼프의 INF 탈퇴 발언은 다른 목적도 지니고 있다. 북한에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자는 것이다. 비핵화를 거부하면 사방을 에워싼 미국의 미사일이 예고도 없이 김정은 체제를 강타할 수 있다는 경고다.”

뉴욕타임스의 마크 티이슨의 지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북한 비핵화협상의 다이내믹, 그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았다.

1983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의 SS-20 핵미사일 배치에 맞서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 II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다. 반대시위가 잇달았다. 그러나 이는 모스크바에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 결국 INF 체결로 이어졌다.

INF 탈퇴를 통해 트럼프는 평양에, 또 베이징에 같은 압력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시아 지역에 중단거리 미사일(사정거리 500~5500km)을 배치함에 따라 항모 전단 파견 없이도 미국은 서태평양 일원에서 계속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바로 그 때문에 트럼프의 INF 탈퇴카드는 북한 핵 폐기협상과 관련해 베이징측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는 진단도 뒤따르고 있다.

트럼프의 INF 탈퇴선언- 이는 보다 큰 그림으로 보면 관세전쟁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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