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완만한 왕복 5.5마을 코스

2018-10-26 (금) 정진옥
크게 작게

▶ Mt. Emma & Old Mt. Emma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완만한 왕복 5.5마을 코스

Mt. Emma 정상에서의 Old Mt. Emma.

오늘 안내하는 Mt. Emma와 Old Mount Emma 는 LA 에서 아주 가까운 San Gabriel 산맥에 있지만, San Gabriel 산맥에 있는 통상의 여느 산과는 많이 다른 특질이 있다.

San Gabriel 산맥은 동서로 68마일, 남북으로 23마일에 걸쳐있어, 길쭉한 럭비공이나 통통한 고구마를 닮은 모양이다. 제주도 면적의 약 1.5배가 되는 산악지역으로, 그 남쪽은 LA카운티를 면하고 있고 북쪽은 모하비사막을 면하고 있다.

Mt. Emma는, 동서로는 San Gabriel산맥의 중간쯤이면서 북쪽의 맨 가장자리인 Mojave사막에 닿아있어, 기후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태평양보다는 대륙의 영향을 받는다는 특징이 있겠다. 그런데 San Gabriel산맥의 산들이 대개 거칠고 험준한 산세를 가지는 악산이고 골산임에 비해 완만하고 편안한 곡선의 능선에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있는 육산이면서 덥고 건조한 사막지역답게 이렇다 할 수목이 별로 없어, 대지의 여신 Gaia가 그 풍염한 나신을 그대로 다 드러낸 채 Mojave사막이라는 편안한 모래 카펫에서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될 만큼 티없이 정갈하고 부드러운 산세를 이루고 있다.


Emma 라는 산의 이름은 1900년경에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0마일 거리의 Devil’s Punch Bowl County Park의 인근에 있던 Pallett Ranch Family의 따님들 중에 유난히 사랑스럽기로 인근에 평판이 높았던 젊은 여식의 이름에서 온 것이라고 하니, 역시 이 산이 주는 깔끔하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분위기가 고려된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Pallett Family는 Devil’s Punch Bowl의 동쪽이며 Big Rock Creek의 위쪽에 터를 잡고 Ranch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Mt. Williamson 과 Will Thrall Peak 으로 이어지는 Pleasant View Ridge 상에 있는 Mt. Pallett 은 이 가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니, 아마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림을 받을 만한 후덕한 가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 가족이 3개의 큰 산에 이름을 남겼으니, 가문의 영광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우리의 어른들이 선영에 조상들의 생을 기리는 비석을 새길 때, 비문의 말미에 붙이는 말이 대개 ‘영세불망’ 인데, 영원히 세세토록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지라는 염원의 표출일 것이다. 이 Pallett Family 야 말로, 큰 산들에 가문의 이름을 올리게 됐으니, 가문의 굳건한 바탕이었던 Ranch 는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가문이 지은 적덕의 선과가 그야말로 ‘영세불망’ 의 맑은 영예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 속담인 “호랑이는 죽어서 그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그 이름을 남긴다” 는,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금전만능의 물신숭배가 보편적 사회현상이 되고 있는 시대에는, 더욱 절실하게 음미되고 선양되고 정립되어져야 할 좋은 교훈이겠다.

다소 비약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올바른 가치를 확고히 하는 데는 등산활동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다. 맑고 향내 나는 천기를 흡입하며 아름다운 산길을 힘들여 걷다보면 육신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감사와 기쁨으로 다가오게 되어지기에, 이러한 대자연과의 교유를 지속하다보면, 만인이 모두 염원하는 행복이란 것은 물질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어 진다. 물질이나 권세에 대한 집착이 누그러지는 대신에 정신적인 충만감이 고양되어짐으로써, 등산의 생활화를 통해서 결국에는 심신의 여유와 건강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하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인자요산 지자요수” 란 말이나 “요산요수의 삶” 이란 바로 이러한 경지를 이르는 것이겠다.

LA 한인타운에서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어 왕래키에 편한 셈이고, 코스도 등산시작점에서 Mt. Emma 까지 1마일, Mt. Emma에서 Old Mt Emma까지는 1.75마일로, 왕복거리가 5.5마일에 순등반고도는 1500’가 되는, 비교적 쉬운 산행이다.

단지, 모하비사막에 인접한 더운 지역이고 그늘을 드리워줄 수목이 전혀 없으므로, 이 산을 오르는 시기로는 여름철은 피해야 하며, 악천후만 아니라면 겨울철도 좋다고 하겠다.


가는 길

I-210의 Angeles Crest Highway(SR-2)의 출구로 나와서 동쪽으로 9.5마일을 가면 Clear Creek의 3거리(Mile-marker 33.8)에 닿게 된다. 여기서 왼쪽으로 갈라져 나가는 도로가 Angeles Forest Highway(N-3)이다. 이 N-3를 따라 Palmdale 방면으로 20마일을 가면(Mile-marker 15.18), 오른쪽으로 Mt. Emma Road 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잘 포장된 Mt. Emma Road 를 따라 2마일을 가면 길 왼쪽 변으로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을 널찍한 세모꼴의 비포장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Mile-marker 2.0). 이곳에 주차한다. LA 한인타운에서 약 45.5 마일을 온 지점이다.

등산코스

등산시작점(4250’)은 주차된 길을 오른쪽(동쪽)으로 건넌 곳의 산기슭에서, 예전에 이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아주 완만하게 중심능선을 향해 올라간다.

10분쯤이면 이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제는 Mt. Emma의 정상을 향해 길쭉한 S자 형태로 완만하게 꿈틀대 듯 굽으며 이어져 오르는 1마일 거리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별로 힘들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산길이다.

올라갈수록 시야가 깊어지면서 차츰 차츰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산줄기들을 보게 되는데 가까운 주변의 산세는 대체로 단순하고 부드럽다. 아마도 멀리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산의 기운들이 이제 이곳 사막의 평지로 잦아 들어가는 마지막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은 산이로되 전체적으로는 산이 중심이 되는 지형이 아니고, 평지가 중심이 되고 그 안에 여기저기 산줄기들이 놓여져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산으로 오르면서 뒤 돌아 보면, 주차한 곳의 뒤쪽 작은 산줄기의 굴곡이 어머님의 젖무덤처럼 포근해 보인다. 대지의 여신의 넉넉한 젖가슴일지도.

한동안 능선의 중심을 걷다보면, 동북방향으로 옛 시절 우리 농촌의 초가지붕 정도의 곡선을 그리는 2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사막에 닿아있는 맨 왼쪽이 Old Mt Emma 이다. 오른쪽 봉은 우리가 지금 오르고 있는 Mt. Emma 와 Old Mt Emma의 사이를 이어주는 Mt. Emma Ridge 의 허리부위이다.

대체로 키가 큰 나무는 거의 없고 드문드문 California Buckwheat 류의 무릎높이의 식물들이 산에 박힌 점인 듯 드문드문하고, 바짝 마른 풀들이 성기게 나 있을 뿐 거의 벌거숭이 수준의 산이다. 산줄기 자체는 비옥해 보이는 부드러운 토양이지만, 식물들이 자라고 번식을 해내기에는 매우 가혹한 열사의 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따금씩 불에 탄 채로 서있거나 쓰러져 있는 관목들의 형해가 눈에 띈다. 아마도 2009년에 있었던 Station Fire에 그나마 드물게 있던 약간의 관목마저 불타버린 듯한데, 그 주변에는 새롭게 싹이 터 오른 어린 Whitethorn들이 보인다.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등산로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그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산줄기를 1마일 오르면 이내 운동장같이 넓은 평지인 Mt. Emma 정상(5273’)에 올라서게 된다.

사면의 경개에 막힘이 없다. 천산만야란 이런 형세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남동쪽으론 Mt. Pacifico 가 두드러지고, 남서쪽으로는 Mt. Gleason 이 밋밋한 그 정상부의 특징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온다.

정상의 중간에 20여개의 돌덩이들을 쌓아 놓고 그 안에 정상등록부를 비치해 놓았으니, 시간이 바쁘지 않다면 이마의 땀도 식힐 겸, 먼저 이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이 남긴 감회를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인데, 우리도 뭐라고 한마디 남김직 하다.

Mt. Emma 의 봉우리 북쪽 끝에 서면 약간 낮은 높이로 봉긋하게 솟은 2개의 봉우리가 반쯤 겹쳐진 채 보이는데, 뒤쪽이 여기서 1.75마일 거리의 Old Mt Emma 이다. Mt. Emma Ridge 를 따라 크게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또 다시 내려갔다 올라서면 이곳이 Old Mt. Emma(5063’) 이다. 대략 1시간쯤 걸린다.

정상에는 좀 더 크게 돌무더기를 만들고 그 안에 정상등록부를 넣어 두었다. 북쪽을 향하면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Palmdale 시가지가 가깝고 물이 담긴 호수가 보인다. 10마일이 채 안될 거리의 Palmdale Lake 이다. 이 봉우리의 북쪽 아래는 바로 Mojave 사막이 된다. 동쪽으로 약 1마일거리의 작은 물줄기는 댐이 있는 Little Rock 저수지이다.

방금 지나온 Mt. Emma 쪽을 돌아본다. 이곳까지 크게 세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서 형성되어지는 Mt. Emma Ridge 의 산줄기가 여신의 몸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막의 평야부에 이렇듯 부드러운 육산의 줄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씻겨 내리지 않고 둥그스럼한 둔덕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의 강우량이 적어 침식작용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인 것일까?

하산할 때는, 비록 정상에서 보면 더욱 가깝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이 보이더라도, 올라온 코스 그대로를 다시 되짚어 내려가는 것이야 말로, 자연을 배려하는 등산인의 기본준칙이자, 자신과 동료들도 배려하는 안전수칙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진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