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 비핵화 큰 그림을 보면

2018-10-25 (목) 오준 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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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비핵화 큰 그림을 보면

오준 전 유엔대사

북핵 문제 해결이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다시 진전을 보이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도 몇달 내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현재 상황을 “우리가 가는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같은 미답의 행로는 북한과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게임에서 리스크가 가장 큰 당사자는 북한이다. 25년간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하기보다는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알고 있는 북한의 스타일에 더 부합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의사를 반복해서 표명하고 있다. 결국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통해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정권 유지를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수 있다.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국제제재를 받는 가운데 경제발전을 이룰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외부에서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의 생존을 도와주는 지원을 할지도 모르지만 ‘생존’과 ‘발전’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북한 정권의 의도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 제재의 해제 또는 완화를 노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물론 현시점에서 북한의 속내를 확실히 알 수는 없겠으나 설사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협상에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비핵화 없는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평양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북한이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하게 되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할 텐데 그 보복을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정확한 인식이라고 본다. 분단된 민족으로서 북한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비핵화 목적 외에는 굳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거나 협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라도 미국 정부가 정치적 고려에서 완전한 비핵화 없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게 된다면 잘못된 조치라는 것을 곧 알게 되고 시정하려 들 것이다. 비핵화 완성 여부는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가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비핵화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그냥 넘어간다든지 하는 일은 생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종전선언, 국제 감시하의 핵시설 해체 등이 합의되면 긍정적 진전이 되겠지만 결국은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이외에 대안은 없는 것 같다. 그 순서와 절차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재를 완화해놓고 보니 비핵화 조치가 미흡한 것을 발견했다고 하자. 바둑의 일수불퇴도 아니고 시장에서 사온 생선처럼 환불이 절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미국의 ‘강력한 보복’을 자초할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북한 지도층의 의지다. 길게 보면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하는 데 있어 부담해야 할 리스크는 외적인 위협에 있는 게 아니고 북한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비핵화를 통해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제일 먼저 북한에 진출하고 경제협력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주변국 정부, 그리고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진출하려 들 것이다.

이 경우 북한 정권은 사회 개방속도를 조절하면서 경제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과거 제재 이전의 북한에서 ‘통제된 경제 개방’이 시도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고난’을 미국이나 남한 탓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주민에 대한 통제와 국가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을 것이냐가 진정한 ‘가보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오준 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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