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난민인가

2018-10-23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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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조지아 달로네가에서 황금이 발견됐다. 미 역사상 첫번째 골드 러시로 불리는 이 발견은 이 지역 백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던 체로키 인디언들에게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조지아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체로키 부족을 쫓아내려 했고 이들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연방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체로키 부족은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며 이를 기각해 버리고 만다.

연방대법원은 별개의 판결에서 인디언 문제는 주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에 관할권이 있다고 판시, 공은 결국 연방정부로 넘어간다. 연방정부는 대다수 인디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 변절자 인디언들과 이주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근거로 인디언 강제축출 작업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체로키 부족은 1838년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 황무지나 다름없는 오클라호마로 장장 1,000마일이 넘는 길을 걸어서 이동한다. 이 와중에 1만6,000명에 달하던 부족민 중 ¼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한다. 이들이 걷던 길에는 ‘눈물의 길’(Trail of Tears)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국의 인디언 강제 이주정책으로 피해를 본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치카소, 촉토, 크리크 등 여러 부족이 같은 일을 당했고 플로리다의 세미놀 족은 연방정부의 이주정책에 반대해 30년이 넘는 게릴라 투쟁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체로키 족의 강제 이주와 집단 사망은 미국역사상 가장 부끄럽고 어두운 사건의 하나로 남아 있다.

우리 선조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1905년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 대신들이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넘기자 일본은 1908년 동양척식 주식회사라는 것을 설립한다. 이 회사는 전국적인 토지 조사를 실시하고 복잡한 신고 절차를 만들어 이를 기한 내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았다. 이렇게 해서 동양척식이 먹어 치운 토지가 전체의 4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아침에 땅을 잃은 농민들은 소작농이 되거나 만주로 올라가 삭풍한설을 견디며 농토를 개척해야 했다. 소작농들도 상당수는 고리채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후 유랑 걸식하는 처지가 됐다. 난민과 유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무능하거나 힘이 없으면 그 밑에 있는 국민들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멕시코 남쪽에서 수천명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국민들이다. 멕시코정부는 이들을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역부족이고 트럼프는 이 사태를 방치할 경우 중미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끊고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미 입국을 막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으나 이들 귀에는 별로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죽은 목숨이라며 어차피 죽을 바에야 미 국경선을 넘다 죽겠다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 살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세계 살인율 1위인 국가는 10만 명당 82명이 살해당하는 온두라스다. 2위는 66명인 엘 살바도르로 3위인 코트디브와르 보다 10명이 많다. 이들 나라는 마약 갱단들의 전쟁으로 사실상 치안이 마비됐다. 집을 나서는 순간 무사히 살아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다.

당연히 경제는 엉망이고 일자리도, 먹을 것도 없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 국민 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다 죽느니 살 길을 찾아 떠나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렇게 넘어오는 난민들을 무조건 받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중남미인 거의 전부가 미국으로 오겠다고 아우성을 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범죄자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이들도 못난 지도자를 만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불과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그랬다.

“누구도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만큼 나를 작게 만든다. 나는 인류 전체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물으려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는 존 돈의 시구가 떠오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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