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고 험난한 비핵화의 길

2018-10-11 (목) 김동현 전 존스합킨스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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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험난한 비핵화의 길

김동현 전 존스합킨스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지난 7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회담 결과는 세 가지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고, 비핵화 과정을 논의할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6월 싱가포르 합의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북미가 계속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한동안 정체되었던 북미간의 비핵화 대화가 재개된 것이다.
폼페이오는 김정은과의 4번째 만남이 ‘생산적인 대화’였다면서 비핵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논의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폐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실험기지 철폐에 미국인 사찰단을 보내기로 합의한 것은 전향적인 성과이다.
그러나 폼페이오의 이번 방북이 전반적인 비핵화 과정을 도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북미 간에 근본적인 접근상의 차이점들을 협상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폼페이오의 방북이 끝나자마자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을 가까운 장래에 만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다 같이 제2차 정상회담을 원한다. 2차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는 트럼프의 입장에서 북한이 충분한 비핵화 조치를 보였거나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서고, 이것을 비핵화 과정의 커다란 진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시점에서 결정될 것이다.
현재 북미는 비핵화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선 비핵화를 주장한다. 북한은 단계적 동시행동의 접근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실현할 때 까지 제재압력을 계속하고,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관계정상화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폼페이오가 북한의 ICBM의 해체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김정은의 조건부 영변 핵시설 철폐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은이 바라는 ‘상응한 조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합의는 트럼프가 직접 발표할 수 있도록 남겨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편, 비핵화의 시한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그 시한을 트럼프의 현 임기가 끝나는 2021년 1월까지라 말한 바 있다. 워싱턴은 처음에 1년 또는 6개월 등 단기 시한을 제시했다가 북측의 격한 반대에 부딪친 바 있다. 폼페이오는 지난 주 ‘시간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3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요구한 북한의 핵무기와 시설의 검증 가능한 신고 제안은 지금까지 북한이 강경하게 거부해왔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무장관은 지난주 핵시설 신고 대신 영변 핵시설 철폐와 종전선언의 교환을 미국이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보다 광범하고 구속력 있는 항구적 평화체제의 입구라고 보고, 이를 강력히 추진해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도 종전선언이 주한미군이나 한미 동맹과 무관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선언 후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런데 10월 2일 북한의 중앙통신은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흥정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이 원치 않는다면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논평했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 압력이 계속되는 한 북한의 일방적 비핵화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입장은 지난 달 이용호 북한 외상의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잘 나타났다. 북한에 ‘확신을 줄 수 있는 미국의 상응조치’ 없이 적대적인 미국의 제재 압력 하에서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 시점에서 평양은 상응 조치의 초점을 종전선언에서 경제제재 완화로 전환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진전은 정치적인 종전선언보다 실익이 걸린 제재완화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

<김동현 전 존스합킨스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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